어느 자유주의자의 12년의 기록 - <송환> review






어느 자유주의자의 12년의 기록 - 송환

이야기 하나 - 며칠 전 한 후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한총련에서 일했었고, 지금은 운동을 접고 사회생활에 뛰어든 한 선배의 연행소식이었다. 활동 당시 통일위원회 소속이었는데 북한과 관련된 일 때문에 조사를 받게 된 것 같았다. 국가보안법이 무엇이길래 이제 활동을 접은 이를 잡아가 조사를 벌이고 있는지, 몇몇 사람들이 함께 구속되었다든데 총선을 앞두고 조직 사건을 조작해내려는 것은 아닌지, 21세기에 접어들어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중의 악법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야기 둘 - 작년 5월 인권영화제에서 '경계도시'라는 영화를 보았다. 지금은 구속되어 7년형을 선고받은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경계인으로서의 삶, 조국의 땅에 발 디딜 권리를 거부당한 이방인에 대한 진실된 기록이었고, 송교수의 진실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는 영화였다. 참여정부의 공안검찰이 황장엽 교수의 일방적인 증언으로 그를 가두고 있지만 분명 진실은 승리할 것이며 그 승리의 날에 국가보안법 또한 철폐될 것이다. 분단이 만들어 낸 경계인을 '우리'로 진정으로 포용할 때 통일은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을까?

이야기 셋 - 그리고 송환. 송환은 30-40년간 신념을 지켰던 '특별한' 인간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평범한 할아버지들의 12년간의 '사는' 이야기를 담은 진실된 다큐멘터리다. 자신을 자유주의자라 밝힌 김동원 감독의 나레이션은 12년간 비전향 장기수 할아버지들과 함께 한 '시간'들 속에서 변화해 나가는 한 인간의 목소리를 그대로 들려준다. 다큐멘터리가 리얼리즘에 다가가려는 영화적 노력의 장르라고 볼 수 있지만 다큐멘터리도 감독의 시선과 편집이 존재하는 한 '사실'을 넘어서는 감독의 주관적 시점은 중요하다. 작년에 개봉된 '볼링 포 콜롬바인'에서 미국의 이면을 조롱하는 마이클 무어의 목소리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자유주의자라 자처한 김동원 감독은 12년간 인간에 대한 성찰을 해 왔던 것이며 그 시간속에서 반공주의에 길들어 살아왔던 자기 성찰의 시선까지 획득하고 있다. 그 시선은 21세기 남한이라는 사회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분명 유효한, 부끄러운 성찰이 될 수 밖에 없다.

영화는 30여년간 전향을 거부한채 신념을 지켰던 조창손 할아버지와 또 다른 동료 할아버지들, 그리고 그 주변인들에 대한 소소한 일상을 담는다. 거대한 담론이나 이데올로기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 자신이며 일상만큼 그 인간에 대한 진실한 기록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제된 전향 후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속에서 살아야 했던 아픔을 고백하는 김영식 할아버지의 진실된 말과 그 순박하고 주름진 얼굴에서 할아버지들이 인내했을 그 아픔들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진다. 송환을 앞두고 갑작스레 결혼을 발표하는 안학범 할아버지, 뒤늦게 아흔의 노모에게 내 말을 좀 듣지 그랬냐는 가슴아픈 말을 들어야했던 김선명 할아버지, 봉천동에서 동고동락했던 마을 아줌마들에게 환송회에서 반지와 목걸이를 주며 환하게 웃던 조창손 할아버지의 순박한 웃음에서 어떠한 이념이나 정치한 논리보다 역시 중요한 것은 '인간'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그들이 버틸 수 있던 건 정치한 신념이나 이데올로기보다 냉혹한 고문과 폭압에 항거하는 인간의 정당한 거부였을 것이라는 감독의 말이 자유주의와 진보주의에 발을 걸치고 12년간의 시간을 할아버지들과 함께 했던 감독이 내린 결론이 아니었을까?
이제 더 이상은 내 선배같은 이도, 경계인 송두율 교수도, 반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할아버지 같은 이들도 만들어 내지 않는 사회를 상상해 본다. 천만 관객의 영화의 시대, 만일 남한이라는 사회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가 위와 같은 이들을 만들어 내지 않는 어떠한 실천을 담보해 낼 수 있다면 그것을 증명하는 영화가 바로 '송환'이다.

덧글

  • chokey 2006/06/30 03:21 # 답글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던 영화였습니다. 김동원 감독님과 김영식 할아버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모두가 울고 웃었던 영화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김영식 할아버지는 정말 순수하고 천진하신 분이셨어요. 우리나라에서 이런 다큐멘터리 영화가 널리 알려지고 성공하는 날이 와야합니다.
  • woody79 2006/07/04 23:35 # 답글

    chokey님/ 극장에서 펑펑 울었더랬죠... 김영식 할아버님을 잠시 인터뷰할 기회가 있어서 얘기를 나눴었는데요,,, 아, 영화가 떠올라서요... 걸작이죠, 송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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