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의 거짓말 - 아쉽게 막을 내렸던 세 편의 코미디 영화. review



거짓말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코미디일 가능성이 많다. 대개 관객들은 거짓말의 전후상황을 함께 공유하게 되고 거짓말의 주체쪽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마련이다.
이렇게 극의 긴장감이 유지되면서 거짓말에 속게 되는 상대편들이 골탕을 먹게 되거나, 오해가 거듭되면서 상황이 반전되어 나가면서 관객들은 더욱 재미를 느끼게 된다.

올 해 세 편의 거짓말을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가 있었다. 개봉순대로 「그녀를 믿지 마세요」, 「라이어」, 「대단한 유혹」이 바로 그 영화들.
삶의 순간들을 포착하여 그 순간을 더욱 극적으로 포장해내는 것이 상업영화들인바, 이 세 편의 영화는 선의든 오해든 거짓말에서 비롯된 상황을 통해 웃음과 감동을 이끌어 낸다.

먼저 올 2월 개봉하여 연인들의 발걸음을 재촉하며 괜찮은 반응속에서도 「태극기 휘날리며」의 관객몰이에 밀려 간판을 내려야 했던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김하늘의 능청맞은 연기와 강동원의 풋풋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기 전과를 가진 영주가 가석방 중 누나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올라 탄 기차에서 우연히 약사 희철의 반지를 줍게 되면서 거짓말은 시작된다.
희철이 가져간 자신의 가방을 찾기 위해 용강이라는 작은 마을로 찾아간 영주를 그의 가족들과 마을사람들이 희철의 약혼녀로 오인하게 되면서 영주의 거짓말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감독은 촘촘하게 엮어 놓은 상황들을 통해 가족들이 희철보다 영주를 믿게되는 과정을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다.
도시와 농촌의 대비는 거짓말과 순박함이라는 대비는 다소 도식적이지만 가족들과 희철이 영주에게 마음을 열게되는 과정은 감동과 로맨스를 함께 주려한 감독의 배려로 보인다.

다만 깜찍한 사기꾼 영주의 매력을 더욱 더 부각시켰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짜임새있는 구성과 상황, 그리고 김하늘, 강동원과 함께 조연배우들의 연기가 잘 어우러진 올 해의 가장 아쉬운 결과를 남긴 코미디 한편이다.


「라이어」는 영국의 희곡인 원작이며 대학로에서도 롱런한 작품으로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특히 전작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화제를 불러모았던 김경형 감독이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작품이었으나 스타의 부재와 비수기 개봉이라는 악재가 겹쳐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 영화는 제목에서 보듯 거짓말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던 두 남자의 이야기다.

얼짱 택시 운전사 만철은 두 집 살림 중인데, 새벽에 우연히 탈옥수를 잡게 되고 이 사건이 매스컴에 화제가 되면서 들통이 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 곤경을 모면하고자 한 집에 사는 백수 친구 상구와 거짓말을 모이하게 되는데, 여기에 신문기자와 형사까지 두 집에 들이닦치게 되면서 거짓말은 계속 불어만 간다.

이 거짓말 소동극은 만철과 두 부인이 따로 살고 있는 옥수동과 압구정동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연기와 상황, 대사 등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김경형 감독은 이 한정된 공간을 안정적인 시나리오와 맛깔스런 대사, 그리고 개성있는 연기자들의 연기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계속 부풀려나가야 하는 두 주인공, 주진모?공형진의 연기는 영화의 백미다.
또 코미디 연기의 대가들인 임현식과 손현주가 기자와 형사역을 맡아 보여주는 애드립의 향연은 관객의 눈을 끌기에 충분하다.

기존 충무로의 로맨틱 코메디나 조폭 코메디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자극적이지 않은 대사와 안정적인 상황 전개, 그리고 개연성 있는 인물들로 이끌어가는 소동극이라 점에서 흥행 결과가 자못 아쉽다.

마지막으로 여름에 소규모로 개봉되어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던 「대단한 유혹」은 캐나다의 소품 코메디 물이다. 캐나다 퀘백 주에 있는 외딴 섬 '생 마리아' 의 몇 년째 변변한 일자리 없이 살아왔다.

상주 의사가 있어야지만 공장 부지가 세워져 일자리가 생기기에, 120여명의 마을 주민들은 우연히 섬에 들르게 된 성형의과 의사를 잡기 위해 집단적인 거짓말을 시작한다.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주민들은 그가 좋아하는 재즈를 듣고 매일 없는 병을 만드는 한편, 한번도 접해 보지 못한 크리켓을 하고, 매일 같이 돈을 떨어뜨려 놓고, 심지어는 그의 전화를 도청까지 하게 된다.

이 모든 소동후에 결국 의사의 개인적인 불행 때문에 거짓말을 털어놓게 되지만 그를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공동체적인 감수성과 소박한 심성이다.
결국 의사 크리스토퍼는 진실과 거짓사이에서 고민하다 주민들의 진심을 발견하고 섬에 남게 된다.

이 소박하지만 생뚱맞은 소동극 「대단한 유혹」의 오프닝과 라스트에 감독이 강조하는 것은 노동의 신성함에 대한 강조와 그에서 비롯되는 삶에 대한 긍정이다.
많은 네티즌들이 영화를 추천하며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지만 블록버스터 시즌에 개봉되어 많은 관객과 만나지 못했던 「대단한 유혹」은 아마 올해의 코미디로 꼽아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거짓말을 소재로 이 세 편의 영화들은 흥행 성적도 제각각이고 말하고자 하는 소재나 주제도 다르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는 거짓말들이 불러일으키는 극적 상황이 잔잔한 웃음을 주기에 충분한 영화들이었다.
이 세 편의 거짓말쟁이들의 소동극을 보며 미소로 한해를 맞이하는 것도 퍽 유쾌한 시작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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