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키노의 폐간 review



영화 포털 엔키노가 폐간 됩니다.
아마  23일까지가 업데이트의 마지막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전진합니다' 월간지 kino의 슬로건이었죠.

현학적이고 작가주의에 경도된 잡지였다는 욕도 많이 먹었지만
그 만큼 영화를 제대로 다루는 잡지는 없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95년부터 군대전후까지 매번 구입했지만
정성일 편집장이 떠난 이후에 도서관에서나 보는 신세에 머물렀었죠.
그런 제가 키노를 폐간 시킨 독자중에 한명임을 부인할수는 없겠네요.

그 당시 인터넷 포털로 전환한 엔키노에 대한 거부감은 당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잘 들어가지도 않았구요.
졸업을 하고 영화판을 둘러보니, 인터넷 영화 포털에서는 엔키노가 부동의 1위였더군요.
CJ와 연계해서 자본도 더 탄탄해졌으리라 생각했구요.

하지만 계속 쌓여왔던 부채가 문제였나봅니다. 아니 더 큰 문제는 영화사이트가 수익을
낼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죠.
모든 네이버나 다음의 영화 섹션에 네티즌들이 몰리고, 포털이 공룡화되면서 
영화사이트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된거죠.

점점 영화에 대한 사유가 실린 글을 찾아보기란 하늘에 별따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연예포털이 잠식한 포털의 영화섹션은 그야말로 처참한 지경이죠.
물론 전문적인 블로거들이 활동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런 상황은 도대체 암담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키노가 폐간됐을때의 절망감은 점점 더 현실적으로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아젠다를 선도하는 인쇄 매체가 죽으면서 분명 지금의 영화를 둘러싼 환경은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한 영화 월간지 스크린, 프리미어와
부동의 주간지 씨네21, 그리고 필름2.0과 무비위크가 남아있죠.
그리고 온라인 영화사이트 몇 개가 살아남아 있구요.

글쎄요. 포털로 모든 걸 소비하는 시대, 한번의 클릭으로 끝나는 인터넷의 시대가  어떤 영화에 대한 철학이나 사유를 담보해 낼 수 있을까요. 엔키노 또한 그중 나은 영화 온라인이었기에 영화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개탄이 나오는가 봅니다.
밀레니엄을 통과한지 불과 6년이 지났군요.




nkino.com에서 삭제 조치된, 장훈 기자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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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키노에서 98년부터 2003년 3월까지 기자 생활을 해왔던 장훈이라고 합니다. 저는 97년에 공체로 키노 기자로 햡걱했고 저의 의지에 의해서 대기업에서 8개월간 생활하다가 다시 키노 기자로 들어가 5년간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저에게 키노는 영화를 가르쳐준 스승이자 어버이였습니다. 얼마전 키노가 폐간된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오늘 너무 많이 술을 마셨습니다. 이게 과연 후배 기자들이나 편집장님에게 오히려 누가 되는 행동은 아닌지 걱정을 하면서도 개인적인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솔직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이 게시판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키노를 떠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은 사실 키노 폐간과 그다지 상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키노 페간에 관한 이야기는 제가 이미 수석 기자로 있을 때부터 있었던 일입이다. 사실 리노베이션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된 키노의 새로운 면모는 방핼인인 김대선 사장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는 키노가 그 특유의 지적인 선정성으로 명품 광고를 유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키노 편집부는 키노를 살리기 위해서 김대선 사장의 기획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김대선 사장은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시장상황이 좋지 않자 키노를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는 "키노 독자들은 다 똘아이들이다.. 골방에서 틀어박혀 글을 읽는 정신병자들이다.. 절대 독자 엽서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력이 있는 새로운 독자를 도모해야 한다"면서 키노의 편집권에 대해서 매번 딴지를 걸고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키노는 독자여러분과의 대화를 소중히 생각합니다'라는 문구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사실 키노 편집부는 언제나 독자여러분의 생각을 중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업신 여기고 경멸하면서 명품광고 유치에 형안이 되었던 것은 발행인인 김대선 사장이었습니다. 그는 키노 독자를 비웃었고 바보에 병신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보다 구매력이 있는 새로운 독자를 원했습니다. 키노의 변화는 사실 편집부의 의지가 아니라 지본가의 의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선 사장은 자신의 마케팅적 불찰을 모두 키노 편집부에 전가하였습니다. 그는 수익성의 모든 잘못이 키노에 있다고 몰아붙였고 심지어 키노가 다른 자본가에게 인수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키노라는 거만하고 남의 돈으로 지네들 좋아하는 예술을 하겠다는 잡지는 내 손으로 숨통을 끊어놓겠다는 괴이한 책임감에 불타 키노를 폐간하겠다는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장은 언제나 키노와 키노 편집부 그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모두 시대에 뒤쳐진 똘아이들로 치부했습니다. 언제나 편집회의 때 우리들에게 이야기했던 것은 키노 골수 팬들은 키노가 무슨 내용을 담아도 그 책을 본다. '왜 그들에게 애정을 갖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은 광고주들이다. 한 명의 광고주를 유치하는 것이 똘아이 같은 키노 독자 천명 보다 더 중요하다'였습니다.(그는 제가 진행했던 dvd 비지터에 사장은 삼성전자 사장을 인터뷰하라고 제안했습니다. 이유는 삼성전자 사장을 인터뷰하면 그 직원들이 모두 잡지를 사볼 것이고 삼성전자 광고 유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와 편집장님은 말도 안 된다고 거부했지만 그것은 불화를 촉발시키는 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키노 기자들의 논조가 어떠했든, 그들은 여러분들처럼 진정으로 영화를 사랑하고 예술의 새로운 영역에 대한 탐구의식에 불탔던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영재 기자와 단 둘이서 99년 3권의 책을 만들었습니다. 거의 들어오는 광고가 없었지만 그 페이지를 모두 우리들의 기사로 메우면서 매일 밤을 샜던 것은 오로지 순진하게도 독자와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들의 글이 현학적이고 건방젔을지는 몰라도 우리들의 기준에서 독자들을 속이거나 게으름을 핀 적은 없었습니다. 우리들에게 독자들은 우리가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자 동지였기 때문입니다.(저는 이 말에 대한 여러분들의 반응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사려깊지 못하고 현학적이며 독자에 대한 어떠한 배려도 없었던 키노 편집부가 과연 이러한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월 60만원에 한 달에 겨우 두 번 집에 들어가면서, 그것도 수십개월 연채를 거듭하며서, 책을 만들고 그 고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독자 여러분, 우리들의 영화 친구들과의 약속 때문이었지 개인적인 욕망과는 그닥 상관관계가 없었음을 당시의 멤버였던 저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한 점 없이 자신할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키노는 언제나 위기의 상황을 돌파해 왔습니다. '우리는 전진합니다'는 그렇게 우리들의 슬로건이자 클리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상황이 단순히 키노 폐간과 관련된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키노는 여전히 투쟁하고 있고 그 투쟁의 지점은 천민 자본주의의 기고만장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녕 여러분들은 똘아이입니까? 여러분들을 영화 동지로 생각하고 함께 한 키노는 바보 잡지입니까?

투쟁은 지금 이 순간에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의 권리입니다. 함께 싸우지 않겠습니까? 이 우스꽝스럽고 기고만장한 자본의 논리와... 이것은 단순하게 한 월간지의 폐간에 관련된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에게 키노는 어떤 의미였습니까? 키노는 자본의 논리 앞에서 그렇게 시대착오적인 잡지였습니까? 여러분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그렇게 부끄럽게 묻어버리고 굴복하겠습니까? 우리는 여전히 전진합니다.

PS: 사실 저는 오늘 너무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이렇게 분노에 몸을 떨면서 술을 마셔본 적이 정말 얼마만인줄 모르겠습니다. 저는 키노를 그만두었고 이제 여러분들처럼 독자의 자리에서 분노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내부의 사정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터놓고 말하지 못했지만 저는 계속 이 사이트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수다를 떨 것입니다. 정말 순진한 편집부, 착한 우리 후배들이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여기에 다 털어놓을 생각입니다. 키노는 그렇게 기고만장하고 현학적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이것은 단순히 하나의 잡지의 존립 여부의 문제가 아닙니다. 키노의 순진성을 믿어주십시오, 키노는 한번도 자신의 원칙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지금의 비극은 그러한 고지식함에 비롯된 것입니다.

두서없는 글을 반복했습니다. 정신이 돌아오면 제대로된 논지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다시 이 좇 같은 엔키노 인터넷 공간에서 만납시다. 술이 깬 후에...



7월호 끝으로 폐간되는 영화전문지 <키노>, 그 폐간의 속사정 [2003-06-17]

고급-비주류 문화의 설 자리는 없는가?
영화전문지 월간 <키노>가 7월호를 끝으로 폐간된다. 1995년에 창간되어 통권 99호째로 문을 닫게 된 <키노>는 진지한 작가주의의 보루로서 지난 8년 동안 열혈독자그룹의 지지를 받는 대표적인 영화잡지였다. 이같은 전위적인 영향력과 상징성 때문에 <키노>의 폐간 소식은 영화계와 영화잡지 독자층에 하나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태의 핵심 원인은 만성적인 적자 구조와 시장의 축소다. 애초에 <키노>는 정성일 전 편집장, 이연호 현 편집장 등 편집부 주체들이 잡지의 방향과 성격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발행인을 구하는 수순으로 창간되었다. 창간 초기에는 영화 붐을 배경으로 시대의 요구를 선도하는 전략이 캠페인적인 효력마저 발휘하면서 발행 부수 5만부, 판매율 85%의 흑자 구조를 갖추었다.

주간지, 온라인 매체 부상으로 타격

그러나 발행 기업이 부도가 나고 IMF 때 호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00년 가을 온라인 <엔키노>에 브랜드명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새로운 물주와 결합했다. <엔키노>의 ‘무조건 지원’에 힘입어 <키노>는 잃어버린 독자 찾기에 나섰고 2년간 비교적 안정적인 조건에서 발행되었다. 그러나 2002년 여름부터 발행부수가 2만부 내외로 떨어지더니 최근에는 제작비 절감을 위해 1만5천부까지 줄였고, 제작 감소가 판매 감소를 초래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문화 콘텐츠 사업에 대한 발행인과 편집진의 태도인데, “양 노선의 운명적 갈등으로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 당사자들의 최종 결론이다.

이런 결정과 관련해서 발행인의 악덕을 비난하고 <키노> 편집진을 순교자로 만드는 듯한 반응도 없지 않지만, 사태의 원인은 좀더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데 있다는 것이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먼 데서부터 짚어보자면 우선 <키노>의 근본 노선에 대한 사회적 수용태도의 변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키노>가 창간된 때는 오랜 정치적 억압에서 벗어난 사회 특유의 치솟는 활력이 문화 폭발로 나타나고 그 혜택을 영화가 집중적으로 누렸던 시기였고, <키노>는 화려하고 공세적인 작가주의를 기치로 내걸면서 영화담론을 선점하고 선도해나갔다. 그러나 지금은 영화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평준화되고 다양한 전문성을 갖춘 관객이 등장하면서 ’키노적’ 패러다임으로 생산해내는 이슈에 대한 수요가 점차 저하되는 상황이다. “우리가 핵심 독자로 상정했던 층으로부터 ‘입장을 가진 어떤 글도 싫다. 정보만 달라. 내가 선택하고 판단하겠다’는 반응을 접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이연호 편집장)거나 “영화문화와 독자층의 변화를 절감했고 <키노>의 방향에 대한 논란은 비단 발행인의 요구뿐만 아니라 기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적인 현안이었다”(주성철 기자)는 내부의 목소리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영화잡지 전체의 시장성 문제, 특히 월간지에서 주간지로 중심 시장이 이동한 것도 <키노>에게는 불리한 요소다. 숫자면에서도 월간지는 3개이고 주간지는 4개이며 발행되는 횟수로 보면 주간지는 거기에다 다섯배를 곱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월간지는 광고가 고갈될 수밖에 없고 홍보 마케팅 대상으로서도 열세에 놓여 기사 운영에까지 지장을 받게 되는 것이다. 타협의 여지가 적은 <키노>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영화 산업의 활력을 주간지가 대부분 흡수하고 있다는 사실은, <키노>의 상징과도 같은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최근 활동 무대를 보아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더 나아가 온라인의 발달이 끼치는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종이 매체들이 인터넷 환경으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으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키노>의 경우에도 잡지 자체는 시장에서 점차 위축되는 반면 온라인 <엔키노>는 지난해 8월 이후 안착 국면에 접어들었다. <엔키노>의 성장은 초기에 <키노>의 브랜드 파워와 충성도 높은 회원들에 힘입었으나, 온라인 매체의 속성상 스스로 발전하면 할수록 호흡 긴 잡지와는 다른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는 얄궂은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외부 환경 속에서 <키노> 편집진이 별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는 내부적 요인도 <키노> 폐간의 또 한축을 이룬다. 주간지와 온라인 매체의 융성 국면에서 독자와 영화계의 시선을 계속 붙들어둘 만한 이슈를 생산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정체성을 둘러싼 편집진 내부의 논란이 정리되지 않은 채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는 모습이 잡지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잡지를 ‘가볍게’ 만드는 유화 제스처가 새로운 시장에 먹히지도 않으면서 기존 독자들의 거부반응만 키운 셈이다.

대안모색은 불가능한가?

그렇다면 과연 대안은 있는가. 우선 ‘그대로 가라’는 요청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 열쇠를 쥐고 있는 김대선 발행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1999년 <키노>를 인수한 뒤 17억8천만원이 현금으로 들어갔고 지금도 매달 3천∼4천만원의 적자가 어김없이 누적된다. 영화인들조차 <키노>를 하나의 상징으로 여길 뿐 읽는 사람 별로 없고, 제작자들에게 읍소를 해봐도 광고를 주지 않는다. 내 목적이 <키노>를 통해서 돈을 벌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70명의 직원이 있는 벤처회사이자 주식회사의 대표로서 지켜야 할 경제윤리가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키노>는 정신적 이념으로 자본가를 도산시키는 잡지다. 마켓과 콘텐츠가 순기능을 하지 않고 완전히 역행하는 상황에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매체가 생명을 다했다고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문제를 자본과 문화, 상업주의와 순수예술의 대립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매도하니 허탈하다.”

편집진 내부에서도 현행대로의 유지는 불가능하다는 데에 별다른 반박 논리를 갖고 있지 못하다. 시장에서의 실패가 명백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호혜적인 자본에 의지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제작비를 과감하게 줄이고 격월간이나 계간으로 변모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스스로 “답이 없다”며 씁쓸해한다. 예컨대 본격 비평지로 나갈 때 이를 감당할 필자층이 빈약한 현실도 걸림돌이다.

결국 적자를 획기적으로 줄이지도 못할 뿐더러 축소 환경에 맞는 틀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키노>가 호응을 얻은 것은 콘텐츠의 질뿐만 아니라 디자인, 구성, 인쇄, 지질 등의 미감, 외국의 고급 잡지와의 제휴 등도 큰 역할을 한다. 키노적인 만족감은 고비용 구조를 바탕으로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어떤 것이 변한다면 더이상 <키노>가 아닐 뿐더러 정신과 노선이 살아 있다 해도 시장 유지가 어려울 것이다.”(주성철 기자)

이 상황에서 유력한 논리는 문화 콘텐츠의 사업적 가치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라는 전략적 판단과 관련된다. <엔키노>의 성장이 <키노>라는 모(母) 브랜드의 반사 효과이며 향후 <엔키노>의 성장에도 여전히 기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발행인은 이에 대해 “초기 효과는 분명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 투자가 피해를 본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엔키노>의 발전 방향과 점차 괴리를 드러내서 지금은 마더 브랜드(mother brand)가 아니라 ‘그랜마 브랜드’(grandma brand)가 되었다”는 ‘현명한’ 자본가의 입장을 보였다.

<키노>를 독립시켜 내보내달라는 요청에 대해서는 “17억원의 투자로 얽혀 있는 복잡한 관계를 정리하면서 인수할 사람이 있겠냐”고 반문했다. 결국 <키노>는 운명적으로 자멸의 길을 걸어왔고 지금은 그 마지막 길목에 마주친 듯하다. 시장의 악마적 합리성이라는 벽 앞에 무릎을 꿇으며.

99권의 <키노>를 돌이켜보며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키노>의 지난 족적을 돌이키는 것 정도인지도 모르겠다. <키노>는 스스로 존경과 사랑이 우러나는 영화를 취사 선택하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태도를 고집스레 견지해왔다. 이 부분이 ‘편협한 작가주의’라는 공격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영화와 사회의 관계를 원론적으로 환기하고 일관되게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독자의 사랑을 받은 이유이기도 했고 통찰력의 근원이기도 했다. <키노>가 창간호에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21세기 11명의 시네아스트’로 꼽았을 때 우리 중의 누구도 키아로스타미를 알지 못했었다. 그 외에도, 심혈을 기울인 긴 인터뷰, “뽕을 뽑고야 마는” 특집, 스타일 독법에 대한 강조 등이 저널의 한 범례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비주류, 독립영화, 퀴어영화, 아시아영화 등을 우리나라 영화담론의 핵심 카테고리로 끌어올린 것도 <키노>의 공로라고 할 것이다.

<키노>는 하나의 잡지 이름이자 자신의 생령(生靈)을 한국의 영화문화에 쏟아부었던 하나의 사조이기도 하다. 사조는 역사에 남는다.

초창기부터 8년 내내 <키노>를 지켜온 이연호 편집장은 “내가 어떤 선택을 했어야 옳았겠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키노 사람들’이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어떤 실책이나 미숙함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제법 이성적인 의심을 가져볼 수 있다. 혹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 혹은 하나의 매체가 두개의 서로 다른 시대의 요구를 감당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천재는 늘 요절했다고 기록되는 것일까. 그렇게 보면 8년에 걸친 99개의 <키노>의 족적은 어쩌면 짧았던 것이 아니라 긴 역사인지도 모른다.

<키노>의 폐간 소식이 인터넷을 타고 퍼지면서 독자들의 반응이 속속 모이고 있는데 “가슴이 너무 아파서 내내 울고 다닌다”는 식의 격렬한 감정 토로가 많다. 잡지와 독자가 무언가 심층적인 것을 공유하는 데까지 나아간 관계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반면 <키노>의 ‘현학성’과 ‘공격적인 문체’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부담을 느꼈던 사람들은 “<키노>의 오만이 초래한 자업자득”이라는 식의 냉소적인 반응도 보인다. 이 와중에 특이한 것은 기존에 <키노>를 잘 읽지 않던 독자층이 때늦은 애정 고백과 반성을 토로한다는 점인데, 부담스러워서 읽지는 않았지만 살아 있어 주었으면 좋을 고급-비주류 문화에 대한 일종의 ‘죄의식’일 것이다. 마음 아파하는 다수가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날 길은 또 한명의 계몽된 부르주아가 나서거나, 현재의 발행인과 공적인 자본이 상호 호혜적으로 결합하는 길 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김소희 cwgod@hani.co.kr


덧글

  • earth 2006/06/23 00:26 # 삭제 답글

    엔키노 페이퍼 북은 어떨지 모르지만, 온라인 엔키노는 문제가 많았아요. 독자로써 볼 때. 위의 장문은 바꿔 말하면 열정적 의욕으로 보입니다. 에너지로 전환해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하는데 활용하시길. 투쟁보다는.

    엔키노의 문제는 위에서 기록한 내용과는 무관한, 전혀 비주류도 그렇다고 주류도 아닌, 어느 포털에서도 볼 수 있는 새로나온 영화 정보 위주의 개성없는 컨덴츠에 문제가 있었어요. 그 것이 그렇게 열악한 노동환경 ( 월 60, 야근연속)에서 만들어졌다는 건 엽기적이네요.

  • earth 2006/06/23 00:27 # 삭제 답글

    엔키노 온라인 을 보면서, 얄팍한 영화리뷰들안에 깃든 무지에 분노하고 그 것도 하나의 일이 되던 ' 일단 클릭'이 중단하게 되어서 솔직히 다행이여요.
  • woody79 2006/06/23 00:50 # 답글

    earth님/ 새로운 무언가로 창조하는 것, 좋지요. 저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만...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한 것 2003년 폐간된 월간지 키노 장훈 기자의 경우죠.

    얄팍함... 진지한 글을 원치 않는 인터넷 독자들에 글이 맞춰져 있었다는 것도 하나의 문제죠. 물론 그런 편집 방침을 고수한 편집진에 더 큰 문제가 있지만요.
  • 2006/06/23 09:4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Elliott 2006/06/27 11:11 # 답글

    트랙백하겠습니다. 인터넷에서 포스트 키노는 가능할까요. 갑작스럽게 드는 질문입니다.
  • woody79 2006/06/27 22:00 # 답글

    Elliott님/ 잡지나 출판도 전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키노의 폐간은 절망적이기까지 하죠... 키노는 없어도 넥스트키노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대신 아마 이런 인터넷 환경이 한 10년 정도 정착이 되고 난 후부터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 woody79 2007/08/03 02:41 # 답글

    cipher님/ 전 사실 키노 폐간때 더 그랬죠.
    오늘 시사회는 너무 분벼서 정신이 없더군요...
    언제 영화 얘기하면 좋겠네요.. 정말...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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