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쳐 봅시다, 제79회 아카데미상을.
예전부터 전 아카데미상을 폄하해 왔더랬어요. 아카데미 위원회 노인네들의 보수적인 성향도 싫었고, 할리우드의 상업적인 이데올로기의 첨병 노릇을 하는 그 시상식 풍경도 기분 나빴거든요. 대종상을 비롯해 정착도 안 됐고, 2시간이 아까운 우리네 시상식과 비교해 질투가 나기도 했었겠죠. 그런데 요즈음은 제가 좀 변했는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즌에 맞춰 속속 개봉, 시즌 특수로 흥행 수익을 올리는 각 배급사들의 마케팅 전술이 허를 내두를 정도랄까요. <디파티드>처럼 재개봉으로 쏠쏠한 수입을 올리는 거 보세요.

우리 시간으로 내일 오전 8시에 열리는 제79회 시상식 사회는 엘렌 드제너러스가 맡았네요. 솔직히 잘 몰라요. 앤 헤이시랑 사귀다 결별하기 전 용감하게 커밍하웃한 스탠드업 코미디언 출신 연기자라는 것 밖에요. 보나마나 한두 마디쯤 성적 조크를 늘어놓겠네요.

참, 제 예상이 그리 높은 적중률을 보이는 건 아니에요. 작년에도 제가 맞춘 건 감독상에 이안, 남우주연상에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남우조연상에 조지 클루니 정도거든요. <크래쉬>가 받은 작품상은 <브로크백 마운틴>에, 리즈 위더스푼이 받은 여우주연상은 펠리시티 호프만에게, 레이첼 와이즈가 받은 여우조연상은 미셀 윌리엄스에게 한 표를 던졌었죠. 6개 주요부문에 딱 50%라니요. 흑흑.


그럼 작품상부터 살펴보도록 하죠. 전 <바벨>과 <더 퀸>가 유력해 보여요. 이냐리투 감독은 세 번째 작품이라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딱 아카데미용이지 않아요? 인종과 계급, 그리고 미국에 대한 비판까지. 스케일도 크잖아요. 스티븐 프리어즈도 영국 출신이긴 하지만 이제는 탈 때가 된 듯해요. 대신 <더 퀸>은 노인네들이 그닥 좋아할 것 같진 않네요. 5번이나 지명됐지만 오스카 트로피와 연이 없었던 스콜세지인데요. 근데 <무간도>의 리메이크인 <디파티드>로 받기엔 조금 쑥스러울 것도 같아요. 전 아직 못 봤지만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가 받았으면 하는 심정이지만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불과 2년전 이었네요. <리틀 미스 선샤인>은 선댄스용 영화죠. 글쎄요. 이 영화가 탄다면 가장 의외의 결과겠네요. 결론적으로 전 이냐리투 감독의 <바벨>에 한 표를 던지겠어요. 올 해도 또 틀리려나.


감독상도 흥미진진하겠네요. <바벨>이 작품상이나 감독상 중 하나를 탄다고 가정했을 때 역시 이냐리투 감독은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이겠네요. 그래도 아카데미 위원회가 혹시라도 마틴 스콜세지와 화해를 청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겠죠? 골든글러브와 미국 감독 조합 상도 휩쓸었으니까요. 그러나 아카데미상이 주요부문 중 골든글러브와 엇갈린 선택을 할 때도 많으니까, 지켜봐야겠죠. 작품상에서도 언급했지만 스티븐 프리어즈도 유럽의 영화제에서의 주목도와는 달리 아카데미와는 인연이 없었죠. 이제 탈 때도 되었어요. <그리프터스>이후 16년 만의 노미네이트에요. 폴 그린그래스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할리우드에서의 경력이 얼마 안됐죠? 이건 이냐리투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묵직함이 좀 덜한 건 사실이에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2년 전 트로피의 주인공이었죠? 자, 그럼 선택은 이냐리투와 프리어즈, 스콜세지의 3파전으로 압축되는 가운데, 저라면 스콜세지와의 화해에 무게를 두겠어요.


가장 혼란스러운 부문은 남우주연상입니다. 제가 볼 땐 독재자 이디 아민을 연기한 포레스트 휘태커 밖에 보이지 않거든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직도 ‘영 보이’이라는 인상이 크고, 윌 스미스는 <알리> 때가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라이언 고슬링은 독립 영화 진영을 위한 들러리일 가능성이 커 보이고, 7번 후보 지명됐던 피터 오툴은 공로상이 더 어울려 보이네요. 글쎄요, 지난해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과 같은 만장일치에 가까운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 지네요.


여우주연상 부문은 노장들의 격전지입니다. 헬렌 미렌과 메릴 스트립, 두 거물의 박빙의 승부가 될 가능성이 크죠. 2006년을 대상으로 한 거의 모든 영화상을 휩쓴 헬렌 미렌을 뽑는 것이 심사위원들도 속편할 거예요. 14년 노미네이트된 경력의 메릴 스트립과 5번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주디 덴치는 헬렌 미렌의 들러리 역할을 할 가능성이 커 보이네요. 그건 연령층을 고려한 결과로 보이는 페넬로페 크루즈와 케이트 윈슬렛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특히 크루즈는 스페인어로 연기했고, <리틀 칠드런>은 영화의 중량감이 떨어져 보이고요. 네, 주저할 것이 없이 헬렌 미렌입니다.


남우조연상과 여우조연상은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죠. 우선 후보를 보면 <미스 리틀 선샤인> 앨런 아킨, <리틀 칠드런> 재키 얼 헤일리, <블러드 다이아몬드> 지몬 혼수, <드림걸즈> 에디 머피, <디파티드> 마크 월버그, 그리고 <바벨> 아드리아나 바라자, <노트 온 어 스캔들> 케이트 블란쳇, <미스 리틀 선샤인> 애비게일 브레슬린, <드림걸즈> 제니퍼 허드슨, <바벨> 키쿠치 린코 입니다.


남우조연상은 두 말할 필요없이 에디 머피입니다. 역할이 굉장히 좋고 연기도 탁월했습니다. 개그와 춤, 그리고 자살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역할을 탁월하게 연기한 에디 머피는 코미디 영화에서 쌓은 그의 커리어를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을’ 정도로 잘 활용했어요. 여우조연상은 <바벨>이 작품상을 탄다면 키쿠코 린치가 탈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다면 케이트 블란쳇이나 제니퍼 허드슨도 괜찮고요. 대신 흑인 배우들의 비중이 너무 커진다는 약점 때문에 제니퍼 허드슨을 제외시켜야겠네요. 네, 순전히 개인적인 선택인 줄 알지만 키쿠코 린치에게 한 표를 던지겠습니다.

결과는 내일 점심을 먹기 전에 알 수 있겠네요. 시상식이 대략 4시간 정도 걸리니까요. 이번엔 절반 보다는 좀 더 맞췄으면 좋겠네요. 로또도 해보고 싶어지는걸 보면 저도 나이를 먹나 봐요.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by woody79 | 2007/02/25 20:31 | cinema | 트랙백 | 덧글(5)
트랙백 주소 : http://woody79.egloos.com/tb/3017999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Elliott at 2007/02/25 23:10
작품상에는 저도 바벨이 유력할 거라고 봅니다. 다만 미스 리틀 선샤인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이 영화가 선전해주길 바랄 뿐이지요. 잘 지내시죠? 우디님.
Commented by woody79 at 2007/02/26 01:28
Elliott님/ 안 본 영화도 있지만 왠지 바벨이 탈 것 같다는.
잘 지내시죠? Elliott님도?
Commented by marlowe at 2007/03/01 01:12
저는 피터 오툴이 이번에도 오스카를 놓쳐서 아쉽더군요.
공로상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아요.
Commented at 2007/03/13 12:4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woody79 at 2007/03/13 22:33
marlowe님/ 피터 오툴님께 존경을 보내시는군요...ㅎ

viperwine님/ 아, 코데인님. 아, 반가워요. 반가워요. 전 이글루스 블로거 들은 만난 게 그날 처음이라 무지 반가웠더라는요...ㅎ 종종 뵈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