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XX 똑같아. 정말 우리 때도 팔꿈치 위에 살 만지고 그랬다니까. 저렇게 맞기도 했었어." "진짜? 우리 학교는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영화 상영이 끝나고 객석을 나가던 찰라, 뜻하지 않게 바로 등 뒤에서 따라 나오던 두 20대 초반 여성들의 목소리가 저절로 귀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재미있다는 듯한 말투로 영화 속 여고생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들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렇다. 제9회 서울여성영화제 개막일에 상영된 유은정 감독의 <펀치 스트라이크>는 이 땅에서 여고를 다녔던 혹은 다니고 있는 여학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일명 '미친개' 선생들의 만행에 강펀치를 날리는 영화다. 그 강펀치는 분노나 격앙된 감정 대신 왠지 모를 미소를 짓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광견의 주특기 '가슴 손대기' '귀볼터치' '못생긴 아이 멸시하기'
내용은 이렇다. 같은 킥복싱부 남학생 창민을 짝사랑하는 18살 민아(박민지)는 특별할 것 없는 풋풋한 여고생.
로맨스로 빠질 줄 알았던 영화가 복수극으로 치닫게 된 계기는 평범하다. 실내화를 신고 매점에 간 민아가 소문난 악질 선생 광견(임원희)에게 걸려 훈시를 듣고, 친구 주희 때문에 '풋' 하고 웃었다는 이유로 창민 앞에서 따귀를 맞게 된다는 것.
민아는 이제 광견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며 복수에 나선다. 나름 치밀한 계획 하에 친구 주희와 함께 행동에 나선 민아는 교장의 도자기를 광견이 깨뜨린 것처럼 보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광견은 무언가 음모가 숨어있음을 직감하고 더 거센 감시와 폭력을 일삼는다. 이 때 모범생 영주가 합류하면서 이 세 위풍당당 여고생은 광견을 골탕먹일 기상천외한 납치극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이름표 가다듬는 척 가슴 손대기' '이제는 애교로 봐줄 만한 귀볼 터치' '팔꿈치 위에 살 만지기' '못 생긴 아이 멸시하고 돈 많거나 공부 잘하고 예쁜 아이 편애하기' 마지막으로 '치마 위로 올라간 러닝 넣어주는 척 하며 엉덩이 만지기' 등등은 영화 속 광견의 만행 목록들이다.
그런데 광견이란 이름이 낯설지 않다고? 벌써 개봉한 지 10년이 지난 <여고괴담>에서 처절하게 죽어가던 학생 주임을 기억하는가. 그의 별명이 바로 '미친개'였다. 각 고등학교 물리 선생님의 별명이 '제물포(제 때문에 물리 포기했어)'이듯 여고에서 학생주임의 단골 별명이 바로 '광견'인 것이다.
유은정 감독은 고등학교 시절 실내화 때문에 따귀를 얻어맞았던 자신의 경험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금에야 사정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90년대까지 중·고교를 다녔던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와 캐릭터들이 <펀치 스트라이크>에 새겨져 있다.
웰메이드 단편, 짜릿한 일탈의 쾌감

신인감독답지 않게 능숙한 상황 연출과 모나지 않은 화면 구성에 자연스런 플롯 전개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나름 '웰메이드'하다. 유은정 감독은 단편 <흡연모녀>로 제27회 클레르몽 국제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언급상을 수상하고, 국내외 다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유 감독은 대중 영화의 호흡을 빌려 자칫 단조롭고 평범할 수 있는 에피소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수업 종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매점으로 달려가는 여학생들을 고속촬영으로 우스꽝스럽게 처리했고, 임원희의 과장된 연기를 빌려 '광견'을 그럴싸한 인물로 형상화시켰다. 또 적절한 교차 편집으로 서스펜스를 자아내고 학생들의 엉뚱한 반응 숏으로 웃음을 이끌어 내는 식이다.
사실 10대들의 생활이나 대화들이란 것이 한발짝 물러서서 관찰하면 엇박자나 썰렁 개그 그 자체가 아니던가. 한 꺼풀 벗기고 영화를 들여다보면 민지 패거리의 복수극은 짜릿한 일탈의 쾌감까지 안겨준다.
'광견'을 교장의 아들로 설정하고, 아이들의 입을 통해 "교장 아들이니 어쩔 수 없다"는 대사를 부여한 것은 그만큼 이 땅에 사립학교가 많다는 방증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악질 선생과 '맞짱' 뜨는 발칙한 상상을 해왔을까. 과장을 조금 섞는다면 그건 이 땅의 억압적인 제도 교육에 대한 영화적 울분의 표현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누구에게도 이들 학생들에게 선생을 단죄할 자격을 부여한 적은 없다. 다만 영화가 현실에 말을 걸 때, 그 비루한 현실을 직시하며 고통에 참여할 것인지, 판타지를 섞어 잠깐의 위로를 줄 것인지는 전적으로 감독이 선택할 문제이다.
유은정 감독은 <펀치 스트라이크>에서는 분명 후자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어떤 영화를 지지할 것이냐는 그 후 관객의 몫일 것이다.
비루한 현실, 직시할 것인가 위로할 것인가

단점도 있다. 전작인 단편 <흡연 모녀>에서 감지됐던 인간적인 내음은 케이블 방영용으로 먼저 선보인 이 작품에서 다소 퇴색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던져 볼 만하다.
특히 광견이 민지와 또 다른 학생에 가하는 물리적 폭력을 장황하게 보여줌으로써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는 다소 불쾌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표현은 대중성을 고려했을지언정 인간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감독의 시선은 변치 않은 것처럼 보인다. 가난이 제일 싫어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택하겠다는 모범생 영주와 연대하고 소통해 나가는 과정이 서브플롯으로 전개되는 것도 그 단서다.
물론 영주를 비롯한 모든 여고생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지 않다. 영화의 마지막, 선탠을 위해 학교 옥상에 나란히 누운 세 여고생의 모습은 한국 영화의 그 어느 여고생보다 사랑스러워 보인다. |
# by woody79 | 2007/04/08 22:59 | review | 트랙백 | 덧글(7)
|

독특한 영화읽기를 통한 세상과의 소통공간 by woody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