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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이상하다. 99% 픽션이라느니 1980년 5월 8일이라는 날짜를 박아놓고 시작하는 폼이 <엽기적인 그녀>의 전, 후반, 연장 구분이나 <광식이 동생 광태>의 광식이, 광태, 광식이 동생 광태라는 자막 구분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야구와 연정, 그리고 한 남자의 변모 과정을 80년 광주라는 시공간적 배경 안에 새겨 넣다니. 내내 유쾌했던 영화를 보고 나면 잠시 잠깐 머리가 아릿해진다.
<YMCA 야구단>. <광식이 동생 광태>의 김현석 감독은 각본을 쓴 <사랑하기 좋은 날>과 <해가 서쪽에서 뜬 다면>로 알 수 있듯 영화판의 유명한 야구광이다. 선수들이 보자면 ‘또, 야구야?’라고 반문 할지 모르지만 감독으로서 자신의 홈그라운드를 변주해내는 것만큼 자신 넘치는 작업이 또 있으랴. 7년 전 접한 “1980년 광주일고 3학년 선동렬이 있었다”란 문장에서 시작됐다는 <스카우트>는 그 아이러니에 기반 한다. 홈이 어디인지, 파울이 무엇인지 모를 일반인들이 보기엔 별일이겠느냐만 야구팬이라면 눈이 번쩍 뜨일 80년 광주 속 괴물투수. 김현석 감독은 영리하게도 이 모두를 아우르며 괴물투수를 스카우트하러 간 전직 투수 호창(임창정)을 내세운다. 그 시절 광주 속에 들어간 이방인. 그리고 관객을 바로 그 호창의 자리에 위치시킨다. 선동렬이 누구인지도 잘 모른 채 내려가서 7년 전 헤어진 같은 과 후배이자 ‘뽀뽀 잘 하는 운동권’ 세영(엄지원)의 뒷꽁무니를 졸졸 쫒던 호창을 보여주기까지의 장르는 코믹 멜로다. 선수시절 앙숙이던 라이벌 학교의 스카우터와 경쟁을 하게 되고, 서울에서의 압박은 죄여오고, 괴물투수 부모님 모두와 마주하게 되면서 호창의 직업 정신은 발동하기에 이른다. 중간중간 세영에게 연정을 품은 손 씻은 동네주먹 서곤태(김철민)과의 신경전에서 새록새록 떠오르는 달콤한 연애의 기억도 그를 부추긴다. 김현석 감독은 여기까지 현재형의 두가지 연애태를 관찰했던 <광식이 동생 광태>보다는 한 템포 느리게 코믹멜로의 기운을 놓치지 않는다. 중간 중간 김철민의 슬랩스틱 코미디와 특유의 감칠맛 나는 대사빨을 유지하면서. 여기서부터 중요한 것은 세영이 운동권 학생이었으며 ‘광주’로 낙향했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우리가 순순히 몰입을 하게 도와주었던 호창의 순수함이 무지로 변했을 때, 그의 트라우마는 더 생생해진다. 호창이 TV에 나온 전두환 장군에게 “그래도 남자 중에 남자”라고 한 마디 했다가 세영이 경멸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딱 한 신으로도 모든 것은 설명된다. 이 둘의 관계가 시대에 무관심했던 남자와 그 시대를 끌어안았던 한 여자가 선동렬로 인해 5월 광주에서 만난, 그 시대의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스카우트 호창은 택시운전사 민우로, 이제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세영은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는 신애로 살짝 바꿔치기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나친 과장이라고? 과장 맞다. 하지만 굳이 <화려한 휴가>를 언급한 것은 김현석 감독이 <화려한 휴가>의 프리퀼일지도 모르겠다는 농담을 던진 것 때문은 아니다. 김상경과 이요원, 그리고 이준기가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던 그 평온함과 폭풍 전야를 코믹 멜로로 옮겨 놓은 것이 <스카우트>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현석 감독은 신파나 스펙터클, 정치적 공정성에 함몰되지 않고 영화를 만드는 재기를 발휘한다. 단지 소재주의에 빠지지 않고 캐릭터를 통해 정치적 공정성을 구현하는 것. 이건 분명 한국 영화 안에서 쉽지 않은 성취다. 폭압의 정국에서도 서민들은 일상을 살아갔고 호창의 캐릭터도 딱 그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정권에 동조하게 됐던 그 시절. 김현석 감독은 호창 또한 그런 인물이었고 또한 세영과의 이별의 이유에 굳이 그 맥락을 삽입한다. 관건은 순수한 남자 호창의 변모 과정. 선동렬 스카우트를 성공적으로 마쳐갈 즈음 계엄령이 선포되고 광주 시내에 공권력이 투입되던 그 순간, 뒤늦은 호창이 부지불식간에 저지른 죄를 깨닫는 부분은 그 시절 서울에서, 부산에서, 대전에서 광주의 비극을 눈치 채지 못했던 ‘우리들’의 부채의식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이별의 이유를 듣지 못해 7년을 애 닳아 했던 호창이 세영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액션은 클라이맥스의 상승효과와 맞물려 트라우마를 깨뜨리고 우리들의 부채의식을 깨뜨리기 위한 영화적인 살풀이로 기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다 광주를 상업적으로 팔아먹는 행위 아니냐고? 이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는 공식에 가까운 상업 영화 안에서 김현석 감독이 택한 두 가지 장면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지난해 같은 시기 개봉한 <그 해 여름>의 취조실 장면을 떠올려 보라. 수애와 이병헌의 빅 클로즈업을 잡고 한껏 가학과 신파의 감정을 끌어올린 것과 비교해 <스카우트>는 서로 모른 척 할 수밖에 없었던 호창과 세영의 아픔을 담백하게 묘사하고 지나간다. 또 예산과 대중성을 의식한 것일 수 있지만 <오래된 정원>처럼 시위 장면의 생생한 묘사로 젊은 관객들을 주눅 들게 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임창정이 시나리오를 선택한 이유로 꼽은 라스트의 처리 방법. 마지막 나레이션을 세영에게 준 것은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스포일러가 되기에 밝힐 순 없지만 호창의 등퇴장 방식이 왠지 <스카우트>가 대중 상업 영화 안에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적 공정성과 현실성을 드러내지 않는가 싶다. 재차 강조하지만 호창의 트라우마를 우리들 모두에게 고스란히 돌려주면서 오버하거나 신파로 빠지지 않는 다는 점은 칭찬해 마땅하다. 영약하다고? <YMCA 야구단>의 또 다른 호창을 기억해 보라. 역사 앞에 모두가 투사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호창은 세영을 광주의 참혹했던 봄날 앞에 구해낸 것으로 자신의 소명을 다 한다. 그래서 이현석 감독이 기자간담회에서 이 영화를 멜로 영화라고 설명했던 건 다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스카우트>를 무슨 대단한 정치 영화로 오해하진 마시길.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 최선의 연기를 보여줬던 무기인 편안함을 되찾은 임창정의 호연과 남자 캐릭터에 비해 스테레오타입이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엄지원, 코믹 연기에 물이 오를데로 오른 박철민의 연기 만으로 이 영화는 충분히 주말 오후 연인과 친구와 깔깔대며 즐길 만 하다. 물론 누구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지만 후반부의 뒷통수를 때리는 찡함도 감수해야할 테지만. 온전한 야구 영화도, 코미디 영화도, 멜로 영화도 아닌, 그렇다고 막무가내 잡탕도 아닌 이 매끄러운 상업 영화로 김현석 감독은 분명 관객의 감정 지수를 들었다 놨다 할 것이다. 또 광주를 다룬 첫 번째 상업적인 장르 영화라는 타이틀도 거머쥐게 될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뒷맛 개운하고 깔끔한 한국 상업영화다, 이런 상업 영화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특히 <광식이 동생 광태>를 좋아했던 관객들, 절대 실망하지 않으리라. 엔드크레딧이 오를 때 흐르는 ‘비광송’도 놓치지 마시길.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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