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아나토미> 시즌4와 I can see clearly now culture




 

  Holly Cole - I Can See Cleary Now


시작은 그 놈의 술자리 때문이었다. 블로거영화제를 위한 미팅이 끝나고 가진 뒷풀이. 미드와 일드 얘기가 나왔고 한 블로거가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2 중 어떤 에피소드의 감동을 꺼내놨다. 한 기둥에 같이 낀 채 병원으로 실려 온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살려야 하는 그런 상황. 아, 그때야 떠올랐다.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4가 시작되지 않았었나?

급기야 어둠의 경로를 뒤지기 시작했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시즌4가 11회까지 진행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이걸 잊고 있었다니.
봐야 할 영화도 많고, 써야 할 글도 내팽겨둔 채 시즌4 1회부터 연속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45분짜리 에피소드를 한 편만 보고 컴퓨터를 끄기란 거의 마약을 끊는 어려움과 비견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구는 '아줌마' 취향일고 할지 모르겠다. <24>를 제외하고, <그레이 아나토미>와 <위기의 주부들>을 최고의 미디로 꼽는 나의 취향. 혹은 일드로 취자면 기무라 타쿠야의 선 굵은 전문직 세계보다 후카츠 에리의 잔잔한 연애물을 좋아하는 이 죽일놈의 취향. 그럼으로 떡밥 덩어리인 <로스트> 보다는 <그레이 아나토미>의 깐깐한 휴머니즘에 열광한다는 말씀.

운전사의 갑작스런 발작에 엠블런스 두 대가 병원 앞에서 전복하고 한 앰블런스의 두 친구가 깔려 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힘을 내라는 치프의 말에 예전 두 사람이 술집에서 한 여자를 꼬셨던 상황을 떠올리는 두 남자.

"그에게 말을 해줘요, 도와줘요"
"레이, 조의 술집에서 사라를 만난 저녁 기억해? 너 바보 같은 작업을 걸었잖아. 서정적인 노래로 꼬셨잖아."
"맞아, 맞아."
"노래가 뭐였지?
"I can see clearly now the rain is gone. I can see all obstacles in my way. It's gonna be a bright (bright)"

그러니까 죽음의 순간, 사그러져가는 친구의 생을 깨우기 위해 불러주는 노래가 지미 클리프의 'I can see clearly now'라니.

이 병원을 소재로 한 메디컬 멜로 드라마는 아마도 E.R처럼 장수프로그램으로 남아도 무방할 것이다. 인턴으로 시작한 5명의 동기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과 연애사, 그리고 매회 3~4명씩 등장하는 환자들과의 관계들은 아마 무한재생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기에. 환자가 지극히 타자화되는 토종 <뉴하트>를 봐도 <그레이 아나토미>의 환자들이 매회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나 상황을 은유해  나간다는 점은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이다.

특히 좋은 건 이 시리즈가 인간사를 축약하면서도 결코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는 다는 것. <뉴하트>가 최근 배낀 아내를 잃은 슬픔에 아이를 외면하려는 남편 에피소드만 봐도 그렇다. 물론 <뉴하트>는 <그레이 아나토미>의 입양아라는 설정을 살짝 비틀고, 주인공의 첫사랑이라는 신파적 설정을 덧씌었지만. 어쨌건 꽤나 감정을 폭발하는 우리와 달리 <그레이 아나토미>의 그들은 결코 본분을 잃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극명한 정서의 차이. 

시즌3에서 치프 자리를 놓고 귀엽게 경쟁하던 교수들을 보여줬던 걸 제외하고, 어떠한 권력관계도 묘사하지 않는 것 또한 명쾌하다. 어차피 <하얀거탑>이나 <웨스트 윙>이 아닌 이상 섣불른 접근보다 완전한 가지치기가 좋지 아니한가.

어쩌다보니 드라마폐인이 팬심을 발휘하는 글이 되어버렸는데, 이래서 미드족이나 일드족이 한국 드라마를 외면한다는 말씀. 이제 또 매주매주 <그레이 아나토미> 보는 맛으로 주말을 보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 <위기의 주부들> 시즌4도 방영되고 있다는 건 보너스. 마지막으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로스트> 시즌4 1편은 여전히 떡밥들로 가득찼더이다. '떡밥의 제왕' J.J 에이브람스에게 경배를.

덧글

  • 푸드파이터 2008/02/15 11:22 # 삭제 답글

    처음 본 미드가 로스트라서 애착이 많이 가요.
  • woody79 2008/02/24 01:39 # 답글

    푸드파이터님/ 저도 사실 지난 여름에 3시즌을 몰아서 봤더랬죠. 그런데 혹시 미디어몹의 푸드파이터님 아니신가요?
  • 푸드파이터 2008/03/08 21:44 # 삭제 답글

    맞아요. 그 푸드파이터입니다. ㅎㅎ 그런데 처음 본 미드라는 말 지금 생각해보니 좀 웃기네요.ㅎㅎ 엄연히 어렸을 때 tv에서 성우의 목소리로 본 것도 미드라면 미드인데 왜 처음 본 미드라고 한건지..ㅎㅎ 어둠의 경로로 처음 본 미드??^^;;
  • woody79 2008/03/11 22:50 # 답글

    푸드파이터님/ 아, 이글루스로 이사온건 아니신가봐요. 그럼 이글루스에서 종종 뵙는 그 푸드파이터님이 그 푸드파이터님이군요. 반가워요. 제가 어둠의 경로로 처음 본 미디는 뭐였을까요? 아마도 위기의 주부들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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