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스데이: 지구 최후의 날 review



시작은 바이러스다. 온몸에 흉측한 상처와 출혈은 물론 장기손상까지 일으키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 삽시간에 감염자들이 늘어나자 영국 정부는 군대를 동원, 감염자들이 창궐하기 시작한 스코틀랜드를 무차별하게 진압하고 완전히 봉쇄하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25년 후, 런던에서 재차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봉쇄 지역에 생존자가 있음이 알려지면서 정부와 안전국은 비밀리에 작전팀을 꾸린다. 넬슨 국장(밥 호스킨스)은 위험 지역에서 어머니를 잃은 여전사 이든 소령(론다 미트라)을 필두로 최강의 멤버들에게 48시간 내에 바이러스 치료제를 구해 올 것을 명한다. 위험 지역에 당도한 이든과 작전팀은 리더를 자처하는 솔(크레이그 콘웨이)과 치료제 개발자 케인(말콤 맥도웰)에 맞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전작 <디센트>의 성공 이후 닐 마샬 감독은 BBC 온라인판과 인터뷰에서 “늑대 인간과 군대영화, 그리고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라고 밝힌 바 있다. ‘새로운 스타일의 호러영화 탄생’이란 찬사를 이끌어냈던 두 번째 연출작 <디센트>를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닐 마샬 감독. <둠스데이: 지구 최후의 날>은 그가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던 어린 시절의 경험과 영화적 취향을 버무린, 호러, 액션 마니아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영화다. 이 작품에서 늑대 인간은 감염자들의 비주얼과 좀비와 같은 행동 양식으로, 군대는 이든을 비롯한 작전팀의 형상화로, 스코틀랜드의 전원 풍경은 극 후반부 치료제를 찾기 위한 이채로운 공간의 배경으로 활용된다.

오프닝부터 10여 분간의 대량 학살 장면이다. 감염자와 일반인이 뒤섞인 아비규환 속에서 총기 난사를 자행하는 군인들을 지켜보노라면 ‘외계인’이나 ‘이방인’만큼 광기에 빠진 ‘사람’이 무섭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준다. 어두운 장면이 주를 이루는 이 오프닝 시퀀스는 규모로 승부하지 않고 적절한 사운드 효과와 특수 분장, 그리고 군인들의 과격한 진압으로 충격을 던져준다. 사실 3천만 달러라는 예산은 거대 블록버스터라 부르기에는 쑥스러운 수준이다. 그러나 닐 마샬 감독은 빠른 화면 전개와 적절한 편집 등의 효과를 통해 저예산의 불리함을 효과적으로 이겨내는 재기를 발휘한다. 그러니까 전작인 <디센트>와 마찬가지로 기발한 아이디어나 기법보다는 정공법을 고수하면서도 극적 긴장감을 탄탄하게 구축하고 있다.

액션신은 시퀀스 별로 다르다. 닐 마샬이 오마주를 바쳤다고 밝힌 작품들의 면면은 이러하다. 바이러스와 좀비라는 소재를 취한 <노 블레이드 오브 글로리>와 <28일후...>부터 사막에서 펼쳐지는 자동차 액션의 고전 <매드 맥스>, 그리고 중세 검투사가 등장하는 <글래디에이터> 등이다. 감독 명단 또한 월터 힐, 존 부어맨, 존 카펜터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SF 액션의 전문가들이 즐비하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슬럼화된 도시 중심에서 부랑자 조직과 맞서는 액션 영웅이란 설정은 <뉴욕 탈출>에서, 과격하고 터프한 표현의 질감은 닐 마샬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월 터힐의 <더 워리어즈>에서, 비관적이고 묵시록적인 미래 비전은 <칠드런 오브 맨> 등에서 자극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둠스데이: 지구 최후의 날>이 관습적인 답습이라고 섣불리 단정 짓는 것은 금물이다. CG와 온갖 카메라 기교로 점철된 거대 예산의 블록버스터와 달리 이 작품은 아날로그적 액션의 쾌감을 전달하려 노력한다. 컷과 컷의 연결은 요즘 관객들의 입맛에 맞게 스피디하지만, 시퀀스 전체가 전달해주는 느낌은 80, 90년대 액션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날로그적이다. 더불어 미국의 R등급이나 국내의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걸맞게 하드 고어를 방불케 하는 표현 수위 또한 호러 팬이라면 환호성을 지를 법하다.

닐 마샬 감독은 여전사 이든을 섹시한 캐릭터로 창조하기보다는 시니컬함과 냉소적인 인물로 다룬다. 어쩔 수 없이 마케팅의 초점은 미모의 ‘여전사’에 쏠리겠지만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포트나 <언더월드>의 셀린느, <레지던트 이블>의 앨리스 등 예의 선배들과는 그 방향을 달리한다는 말이다. 허벅지와 가슴의 골을 드러내기보다는 바이러스 때문에 어머니와 헤어져야 했던 아픔에 시달리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아크로바틱적인 화려함을 자랑하는 다른 여전사와 다르게 이든이 구사하는 전투 능력은 매우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다.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피가 튀는 사실적인 액션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넬스 역의 밥 호스킨스나 케인 역의 말콤 맥도웰, 두 명배우가 스테레오 타입의 조연에 머문 것은 아까운 대목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둠스데이: 지구 최후의 날>의 지향점은 분명 드라마적 긴장감과 밀도보다 시퀀스별로 차별화된 다채로운 액션의 향연에 맞춰져 있다. 미래의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를 주 배경으로(실제 주 촬영은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진행됐다고 한다) 묵시록적인 미래와 중세를 오고가는 공간의 배치 또한 감독의 영악함을 증명해 보인다. <반지의 제왕>을 연상시키는 검술 액션과 <매드 맥스>의 카 체이스가 공존하는 액션영화를 만나기가 어디 쉬운 일이던가. 각 시퀀스마다 액션의 시청각적 쾌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닐 마샬 감독이 ‘필’ 받은 10편의 영화

<레지던트 이블>도 아니다, <툼 레이더>도 아니다. 닐 마샬은 미 영화 사이트 ‘로튼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둠스데이: 지구 최후의 날>에서 영감을 받은 10편의 영화를 꼽았다. 그 화려한 목록을 보고 있노라면, 20세기 후반을 풍미했던 액션 시퀀스들의 활력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물론 2000년 이후 작품들도 드문드문 눈에 띄지만 젊은 관객들에게도 강추하는 리스트가 될 수 있을 듯. 첫 번째로 꼽은 ‘완소’ 영화는 조지 밀러 감독의 1981년 작 <매드 맥스2>. 호주 출신 딘 새뮬러 촬영 감독의 카체이스 신이 압권으로 회자되는 영화로 멜 깁슨의 풋풋한 시절도 감상할 수 있다. 역시 1981년 작인 존 카펜터의 <뉴욕 탈출>도 필견 목록이다. 이든 소령의 시니컬함은 커트 러셀이 분한 ‘스네이크’ 플리슨을 닮아 있고, 슬럼가에서 방황하는 주인공의 궤적도 마찬가지. 이 작품은 1996년에 로 리메이크된 바 있다. 최근작으로는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와 알폰소 쿠아론의 <칠드런 오브 맨>이 첫손으로 꼽혔다. 중세시대를 연상시키는 검투 액션과 묵시록적인 도시의 풍광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올해로 75세가 된 존 부어맨과 66살인 월터 힐, 두 노장의 이름도 반갑다. 장르의 장인들로 일컬어지는 두 노장의 <엑스칼리버>와 <더 워리어>는 SF와 액션 분야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 이밖에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28일후...>의 원전으로 평가받는 1975년 작 <노 블레이드 오브 글로리>와 <나는 전설이다>의 1971년 버전 <오메가 맨>은 닐 마샬이 최근작들보다 좀 더 어두운 묵시록이라는 이유로 좋아한다고. 마지막 두 편은 폭삭 망한 케빈 코스트너의 해양 묵시룩 <워터월드>와 할렌 앨리슨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핵 관련 SF물 <어 보이 앤드 히즈 도그>다. 필름2.0 3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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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뇌전검황 2008/06/16 23:02 # 답글

    약간 28일후 느낌이 나는 포스터던데. 재미 있겠네요.
  • woody79 2008/06/16 23:11 #

    28일후... 와는 초반부가 비슷하다고 할까요.
  • 강민영 2008/06/16 23:31 # 삭제 답글

    엇 저 이 영화, 존 카펜더 좋아하는 분들께 강추라는 성태씨 말을 듣고 은근 기대하고 있어요. 며칠 전에 <해프닝>을 보고 나서 식물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 woody79 2008/06/16 23:49 #

    해프닝은 꽝이라던데... 식물과 대화는 잘 되어 가십니까?
  • 강민영 2008/06/17 23:33 # 삭제 답글

    그것이.. 물을 주지 않아 잎이 몇 가지 죽었더군요-_- 해프닝은 주제는 아 이거야! 스러운데 갈수록 아 이건 아니잖아! 하게 절규하는 영화가 될 듯 합니다. 으하. 놈놈놈 어서 개봉했으면 하네요.
  • woody79 2008/06/17 23:34 #

    해프닝은 누구는 꽝이라고 하고, 우리가 청탁한 평론가는 좋게 평가하고, 이거 뭐 영화를 봐야지 뭘...ㅠㅠ 식물은 죽이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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