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파쿠와 여름방학을 review



방학을 앞둔 어느 여름날, 초등학생 고이치(요코카와 다카히로)는 귀갓길에 처음 보는 신비한 돌을 줍는다. 그 안에서 ‘쿠’라고 외치며 튀어나온 것은 200년 만에 세상을 구경하는 물의 정령 갓파(도미자와 후토). 고이치는 화석화된 돌에서 막 깨어나 모든 것이 낯선 갓파에게 ‘쿠’란 이름을 지어주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200년 전 아버지를 잃고 돌에 봉인된 갓파쿠는 생존해 있을지 모를 또 다른 갓파를 찾아 나서기로 한다. 그러던 와중 갓파쿠에 대한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발 빠른 기자들이 고이치네 집 앞을 점령한다. 어쩔 수 없이 방송 출연을 결심한 고이치 가족. 이들은 위기에 처한 갓파쿠를 지켜내려 하지만 방송 현장에서 또 다른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갓파쿠와 여름방학을>은 1997년부터 2007년까지 4편의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을 연출하며 흥행과 감동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던 하라 게이치 감독의 집념의 산물이다. 그가 고구레 마사오의 동화 <갓파 대소동>과 <갓파 깜짝여행>을 처음 접한 것이 20여 년 전. 그 후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 때문에 시나리오 작업은 더뎌졌고, 2002년 이후 제작에 돌입했지만 5년이란 시간이 더 흘러갔다. 결국 2007년 1월, 원작자는 영화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간의 인고의 세월은 3억 5천 엔을 돌파한 흥행 성공과 각종 영화상 수상이란 영광으로 보답을 받았다.


‘아동용’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다분한 <갓파쿠와 여름방학을>은 세계적인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부터 핑크물이 공존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유구한 전통과 관객층의 너른 지평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영화는 군더더기도, 화학조미료도 없다. 인간들과의 대립이 벌어졌던 에도시대를 간략히 설명하고, 곧바로 갓파쿠와 고이치가 신뢰를 쌓아나가는 여정을 따라간다. 방귀로 헤엄치고, 스모에 능하고, 참치회와 오이, 미네랄워터에 사족을 못 쓰는 갓파쿠는 우리에겐 분명 낯선 존재다. 그럼에도 ‘요괴’이기보다 똘똘하면서 심성 고운 아이를 닮은 갓파쿠는 고이치 가족과의 유대를 통해 매력적인 이방인으로 그려진다. 어찌됐건 영화는 중반 이후 갈등이 점화되기 직전까지 적절한 유머와 따스한 정서를 전달하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미소와 폭소 사이를 오가게 만든다. 그건 순전히 섬세하게 구현된 캐릭터의 힘이다. 고이치의 수줍은 로맨스(?)는 보너스다.

비유하자면, ‘좀 더 진지하고 성숙한 <아기공룡 둘리>’ 혹은 ‘일본 요괴 버전 ET’다. 둘리와 이티, 갓바쿠 모두 현실세계에 불시착한 이방인이다. 세 작품은 아이들과 이방인의 순수함과 세속적인 인간들을 대비시킨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또 고이치 가족과 갓파쿠가 씨름을 벌이는 순진무구한 시퀀스를 보고 있노라면, ‘둘리’와 ‘고길동’ 아저씨의 티격태격하는 다툼이 꽤 강도 높은 코미디였다는 걸 실감하게 될 듯. 더불어 고이치의 동생 히토미는 미운 7살의 특징을 120% 잡아낸 최고의 캐릭터로 의 깜찍했던 아역 드류 배리모어를 연상시킨다. 그렇다고 <갓파쿠와 여름방학>은 섣불리 아동용이나 성인물로 규정될 성질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짱구는 못말려>로 잔뼈가 굵은 하라 게이치는 아이들의 눈높이와 성인 관객의 감수성을 동시에 관장할 줄 아는 연출가다.

복잡다단한 감정을 잠시 잊고 갓파쿠의 매력에 빠져든 가족들의 묘사, 3D 애니메이션과 비교한다면 촌스럽게 느껴질지 모르는 색채와 화면, 하모니카 연주가 돋보이는 담백한 배경 음악 모두 이 영화가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원동력이다. 더불어 하라 게이치 감독은 “다양한 견해를 이끌어내고 싶었다. 어린이를 리얼하게 그려내고 싶다는 바람 역시 그 한 가지다”라고 밝힌 바 있다. 게이치 감독은 고이치를 왕따시키는 친구들, 식구들의 관심을 빼앗은 갓파쿠를 질투하지만 헤어지는 순간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여동생, 여자 동급생에게 말도 잘 건네지 못하는 수줍은 고이치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이렇게 아이들의 얼굴을 긴 호흡으로 바라보는 형식은 갓파쿠가 은유하는 순수성의 회복이란 메시지와 강하게 결부되어 있다.

영화는 현대 일본 사회의 문제점에 경종을 울리려는 의도도 숨기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자연친화적인 갓파쿠는 그들의 늪을 밭으로 바꾸려는 인간들의 이기심에 아버지를 잃는다. 그 후 200년 뒤엔 잠시였지만 도시 속에서의 삶을 스스로 버리고 “인간들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며 오키나와로 돌아간다. 갓파쿠의 궤적 자체가 바로 인간들이 잃어버린 생태주의 회복에 대한 메시지인 셈이다. 이러한 의도에서 갓파쿠가 <이웃집 토토로>의 ‘토토로’처럼 신비한 캐릭터가 아닌, 인간과 같이 희로애락의 감정을 지닌 존재라는 점은 중요하다. 똑같이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하고, 고이치의 가족을 공경하는 갓파쿠는 방송국에서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지만 지켜야 할 본분을 망각하지 않는다. 갈등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오키나와로 떠나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유지하는 것. 또 고이치의 짝사랑인 사요코를 등장시켜 왕따 문제의 심각성을 언급하되 피해자와 가해자를 쉽게 재단하려 하지 않는다. 어느 한쪽의 손을 쉽사리 들어주지 않음으로써 현실의 심각성을 공유하되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고이치가 한 뼘 더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게이치 감독은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말자고 권유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러한 균형감각은 리얼리티와 판타지 사이의 균형을 잡는 이야기나 그림 형식, 모두에 적용하는 원칙이기도 하다.

<갓파쿠와 여름방학을>은 ‘2007 키네마준보 톱10’에 5위로 선정된 것을 비롯해 일본 내 각종 영화상과 애니메이션상을 휩쓴 바 있다. 부드러운 풍자의 칼날이 아동용이란 인식이 여전한 애니메이션에 자연스레 스며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내에서도 ‘갓파와 소년의 만남을 통해 우정의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감동의 판타지’라거나 ‘가족의 정과 우정, 환경문제 등 현대 사회의 테마를 무겁지 않게 담아내어 감동을 자아낸다’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약점이 있다면 138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첫 편집본이 3시간에 달했다는 뒷얘기가 전해지는 이 부담스런 상영 시간은 진중한 요소들을 자칫 곁가지로 치부하게 만드는 부담으로 작용할지 모른다. 아이들은 물론 성인들까지도.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미소시루처럼 담백한 <갓바쿠와 여름방학을>은 감동과 문제의식을 동시에 던져주는 ‘일본산’ 애니메이션이다. 하성태. 필름2.0 393호
이글루스 가든 - 내맘대로 영화해석

덧글

  • 충격 2008/06/23 14:07 # 답글

    에... 편집본이 아니라 그림콘티 단계에서 3시간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찍어놓고 편집하는 게 아니라,
    준비 단계에서 편집을 마친 후에 그리기 시작하는 매체니까요.
  • woody79 2008/06/23 15:09 # 답글

    네, 보도자료 내용을 다시 확인하지 않은 제 불찰이네요. 지적 감사합니다.
  • 강민영 2008/06/23 22:57 # 삭제 답글

    저. 이거. 너무너무. 보고싶어요! 사실 예고편 보고 반했다지요. '아빠 팔은 저절로 알 수 있다구!' 하고 외치는 갓파쿠의 표정이 쿵푸팬더의 만두 씹어먹는 표정과 흡사...(?)하게 느껴져서. 아무튼. 무튼. 튼. 조만간 보러 갈거예요!
  • woody79 2008/06/23 22:57 #

    강추강추 입니당. 저도 눈물 한 방울 찍 흘려주고 왔더랍니다!
  • 강민영 2008/06/23 22:59 # 삭제 답글

    그러고보니 문득 든 생각 투. 성태씨와 늘 같은 시간에 접속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끌끌.
  • woody79 2008/06/23 23:01 #

    뭐 우리 둘 뿐이겠어요. 제가 취침시간이 조금 늦어서...ㅋ
  • 마리 2008/06/24 15:32 # 답글

    로고글이
    '독특한 영화읽기를 통한 세상과의 소통공간...<- 이거 이거 어찌 책임지실려고..ㅋㅋ

    이거이거...초큼 더 독특해야 겠는걸요.ㅋㅋㅋ
    쉽지아나쉽지아나...^^

    *



  • woody79 2008/06/24 23:50 #

    그러게요, 점점 더 글이 하릴없는 소통을 위해 복무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되긴 하네요.
  • 김민지 2008/07/11 16:37 # 삭제 답글

    fhdddyd
  • 김채은 2009/03/26 13:20 # 삭제 답글

    흑흑!저 이거 보았는데요!전 다른 영화에 안 우는 앤데...이 영화 보고 울고 말았네요.
  • sjs3701 2013/05/30 15:57 # 삭제 답글

    저도 보았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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