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감독들의 두번째 영화' 중 review



전무후무한 스타일리시 사극

정범식 감독 | <절정>(가제) | 가을 크랭크인 예정

사극이라고 다 같은 사극이 아니다. <기담>으로 데뷔한 ‘정가형제’의 형님 정범식 감독이 상반기 내내 준비한 <절정>은 이른바 스타일리시한 사극을 표방하고 있다. 하성태 기자


이게 다 <기담> 때문이다. 2007년의 ‘주목받아 마땅한 호러’ <기담>으로 ‘정가형제’의 정식, 정범식 감독은 디렉터스컷 어워드와 영평상, 부산 영평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것도 모자라 시애틀국제영화제, 포르투갈 판타스포르토영화제 등 여러 해외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데뷔작이라는 부담과 호러라는 장르의 외피를 극복하며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리하여 기대치는 높아져만 갔다. 두 번째 영화 <절정>(가제)을 준비 중인 정범식 감독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여기서 비롯된다. <기담>의 팬들은 데뷔작의 비주얼적 감성과 작가주의적 뚝심을 오매불망 고대하고 있겠지만, 정범식 감독은 으레 ‘어려운’ 작품을 내놓을 것이란 선입견과도 싸워야 한다. 소포모어(2년차) 징크스를 깨는 과정은 이런 것이다.

정범식 감독이 고심 끝에 선택한 <절정>의 얼개는 이렇다. 19세기 말 본격적으로 근대화가 시작되기 직전의 조선, 열녀와 기생이 손을 맞잡았다. 이 두 사람이 자신들을 위기에 빠뜨린 최고 권세가를 거꾸러뜨리고 보너스로 어떤 음모와 관련된 황금도 탈취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범상치 않다. 조선과 근대, 여성과 전복, 사극과 장르라는 각기 다른 키워드들이 한 묶음으로 두둥실 떠오른다. “스타일은 미스터리 범죄물에 가깝겠지만 꿈 장면은 판타지답고, 또 호러다운 묘사도 다수 등장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멋스러우면서 장르적인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골고루 배치해 관객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대중성에 신경을 쓸 것이다.”라는 게 정범식 감독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서 기존 사극과 변별점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일 터. 정범식 감독은 관객들이 ‘그 시대에 그럴 수 있는 거야’라는 감탄이 나올 만큼 그간 사극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틀을 깨트리고 싶어 한다. 그런 원칙은 장르나 미술, 대사나 캐릭터 모두에 적용될 예정이지만 그렇다고 퓨전 사극을 표방할 생각은 전혀 없다. 또 스타일리시한 사극이란 외피와 함께 ‘황금 탈취’란 모티브는 ‘누가 어떻게 황금을 차지하게 될까’란 궁금증을 지속시키는 영화적 재미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는 “상업영화에 있어 안전한 답습은 오히려 독”이라는 정범식 감독의 평소 지론과 부합된다.

사실 <절정>은 정범식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는 아니다. 올 초 제작사의 제의를 받고 2월에 뛰어든 프로젝트다. 준비하던 아이템을 뒤로하고 이 사극에 ‘올인’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은 엔니오 모리코네의 장중한 영화음악 ‘하모니카를 부는 사나이’였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를 상징하는 이 음악을 우연찮게 듣는 순간, 정범식 감독은 어둠에서 광명을 찾은 느낌을 받았다. “마카로니 웨스턴이 지니는 서정성과 비장미를 여자 주인공에게 투영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웨스턴 장르에서 상대방을 죽인 뒤 전달되는 고단함을 떠올려보라. 형식 실험이 아니라 그런 공기가 살짝 들어오면 드라마를 좇는 전형적인 사극과의 차별을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정범식 감독이 영감을 받은 그림은 바로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로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체제 전복을 꿈꾸는 조선시대 열녀가 프랑스 혁명 당시 민중을 선도한 그림 속 자유의 여신을 바라보는 장면을 로맨틱한 분위기로 삽입할 생각이다. “19세기 후반은 서양과의 인식 통로가 열려 있을지 모른다는 사고들이 조선에서도 깨어나는 시기였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상응하는 이미지나 상황들을 자연스레 녹여낼 것이다.”라는 정범식 감독은 이 근대성이란 화두를 흥미롭게 전달할 방법들을 목하 고민 중이다.

예술영화 속에 파묻혀 지냈을 거란 예상과 달리 ‘정가형제’는 스필버그로 대변되는 할리우드영화를 섭렵하며 성장기를 보냈다고 한다. 요즘 정범식 감독의 고민도 어떻게 하면 고전 문법을 현대화한 스필버그처럼 세련된 화법을 통해 관객들에게 의미를 전달해나가느냐에 맞닿아 있다. <기담>의 진중함을 떠올린다면 다소 의외지만 <절정> 이후 해보고 싶은 또 다른 아이템도 코미디를 가미한 색다른 호러다. “당분간 예술영화는 끊었다.(웃음) 아직 난 젊고 다양한 장르를 접해보고 싶다.”는 정범식 감독. 그의 두 번째 도전의 출발을 알리는 <절정>은 캐스팅을 비롯한 마무리 조율을 끝마치는 대로 크랭크인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게다가 귀가 솔깃할 만한 배우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단다. 이 스타일리시한 사극, 기대해도 좋을 듯싶다. 장소협찬 카페6시2분

● 사극의 진화를 보여주리라! ●

정범식 감독은 기존의 한국 사극에 불만이 많다.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선 규격화된 미술을 적용해야 하고, 자유분방한 앵글을 구현하기 쉽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표현이나 호흡이다. 사극이라고 해서 꼭 관객들에게 익숙한 화면, 관습적인 표현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판에 박은 듯 ‘정직한’ 촬영이나 리듬은 질색이다. “꼭 사극을 보면 여기선 이런 장면이 나오겠지 하는 빤한 장면들이 꼭 등장하지 않나. 관객들은 그 시간을 참고 기다리면서 시계를 보기 마련이다. 그런 사극 특유의 냄새는 지양하고 현대 관객들의 입맛에 맞는 빠른 템포로 승부할 것이다.” 정범식 감독이 들어준 예시 하나. 중반부 권세가가 열녀를 훔쳐보는 다락방은 기존 사극에서 볼 수 없는 영화적인 공간이지만 관음증과 욕망을 표현하는 동시에 후반부 극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이중적인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여하튼 <기담>과 엇비슷하게 우리는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진화된 장르영화를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필름2.0 397호.

덧글

  • 2008/08/05 09:5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woody79 2008/08/08 14:54 #

    네, 그감독님 멋지더군요. 왜요, 예술 영화 끊는다고 몇 번을 얘기하던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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