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아메리카 거장들과 놀다 culture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부간선도로 한복판에서 택시를 잡아본 적이 있는가? 목숨을 내걸고 한밤중 도로에 뛰어 든 건, 다 존경해 마지않던 ‘라틴 문학’ 선생님 덕이다.(그렇다. 절대 술 때문이 아니다.) 교양과목 조교로 일하던 복학생 시절, 평소 미지의 세계로 동경하던 라틴아메리카 문학 수업이 뒤늦게 개설됐었다. 주저 없이 수강신청을 했지만 돌아오는 건 뒤늦은 후회뿐. 1주일에 소설 한 권을 읽어내기가 ‘먹고 대학생’에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어찌 됐건 조교라는 직함 덕분에 선생님과 쉬는 시간 담배를 나눠 피우는(?) 사이가 됐고, 학기를 마치고는 술자리까지 마련하게 됐다. 그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84학번이던 그 선생님은 화염병깨나 던지던 열혈 ‘386’이었고, 게다가 술 실력도 20대는 저리 가라 하는 수준. 여지없이 선생님과의 독대 자리에서 기억을 잃고 택시로 실려 갔다. 뒤늦게 예의(?)를 차리겠다고 집까지 데려다주던 선생님을 뿌리치고 내린 곳이 다름 아닌 동부간선도로 한복판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변명을 하자면, 정신을 놓을 만큼 취했던 건 술이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선생님의 매력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자율을 강조하는 수업만큼이나 허허실실 풍류를 즐길 줄 알면서도 날카로운 좌파적 기질을 감추고 있었더랬다. 라틴어로 고독(Solitude)과 연대(Solidarity)가 같은 어원에서 파생됐다는 아이러니도, 개발도상 대륙쯤으로 치부했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접하면 접할수록 놀라움을 안겨주던 보르헤스의 소설들이 꽤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관점도, 모두 다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얻은 깨달음이었다.

“아, 저렇게 늙고 싶다.” 특히 선생님의 ‘강추’ 작품인 G.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은 후 머리에 해머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었다. 우리 일제 강점기와 시간만 따지면 비교할 수도 없는 수백 년 동안의 수탈의 역사를, 마르케스는 신화적인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해내고 있었다. ‘진보’적인 시간관을 거부하고, 민중적이고 반식민지적 관점을 견지한 총체성.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은 경탄할 만한 것이었다. 도서관에서 각주놀이를 즐기는 보르헤스가 마땅치 않던, ‘무늬만 D급 좌파’를 매료시키기에 차고도 넘쳤다고 할까.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에서 역시나 눈길을 잡아 끈 건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디딘 그림들이었다. ‘세계의 변혁을 꿈꾸다 - 벽화운동’란 주제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화풍이나 ‘우리는 누구인가 -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정체성’에서 보이는 라틴아메리카의 현실과 모던함을 결합시킨 작품들. 그러니까 꼽아보자면 이런 종류.

멕시코의 사실주의 작가 프란시스코 고이티아의 <쓰레기터의 노인>. 쓰레기 더미 위에 외로이 앉아 있는 하층 계급 노인과 눈물 나게 푸르른 하늘의 비정한 대비. 또는 멕시코 벽화운동을 이끌었던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의 <노동절>. 노동자, 군인들의 충돌과 선두의 붉은색 깃발이 주는 강렬함. 혹은 멕시코 르네상스를 이끈 호세 클레멘데 오로스코의 <선동정치가>. 20세기 초 유럽을 휩쓴 전체주의와 부패한 군인들을 선 굵은 터치로 조롱하는 비판의식. “확실히 라틴아메리카는 뭐가 달라도 달라”를 연발했지만, 이런,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내 짧은 지식과 편협한 시각을 확인해야만 했다.

‘나를 찾아서 - 개인의 세계와 초현실주의’나 ‘형상의 재현에 반대하다 - 구성주의에서 옵아트까지’를 돌아보며 “이 추상적이고 머릿속에 확 잡히지 않는 그림들이 지루한 건 순전히 취향 탓이야”라고 자위해봤지만 남는 건 화장실을 다녀와 손을 안 씻은 듯한 느낌들 뿐. 그때 <색체 물리학 222>란 범상치 않은 작품이 졸음을 쫓아버렸다. 화면 중앙, 다른 색깔의 겹쳐진 세 육각형이 시점을 바꿀 때마다 색과 형태가 전혀 다르게 보였다.

그야말로 요리 보고 조리 볼 때마다 다른 형상, 다른 느낌. 그때 수 년간 라틴 문화 전체를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시켜놓았던 내가 얼마나 편협하고 무지했었나 싶어 얼굴이 다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을 자로 잰 듯이 분석해놓은 발표를 듣고 “정답을 강요하는 건 재미없지 않느냐”라던 선생님의 질책이 머리를 스쳤다. 동부간선도로에서 선생님 덕에 목숨을 구한 지 고작 5년. 나이를 먹는다는 건 자기만의 ‘보수화’와 쌓여가는 아집과 싸우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왼쪽이면 무조건 옳다는 의식에 젖어 있던 내게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이 준 빤하지만 둔중한 교훈 되겠다. 아, 참, 주말 오후에 유명 전시회를 찾는 일은 제발 삼가시라.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건 어린이날 놀이공원을 찾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이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