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전야와 이용배 감독 review





<파업전야>가 일으킨 파급력은 현재 상상하는 것보다 대단했다. 독립영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 작품이 18년 만에 DVD로 출시됐다. 제작 전반을 담당한 이가 바로 영화제작소 ‘장산곶매’의 대표를 역임했던 이용배 감독이다. 2008년 현재 다시 보는 <파업전야>는 어떤 느낌일까?

FILM2.0 <파업전야>를 이번에 처음 봤다. 안치환이 직접 부른 ‘철의 노동자’가 삽입돼서 깜짝 놀랐다.


이용배 연배가 어떻게 되나?

FILM2.0 90년대 후반 학번이니까 까마득한 후배다.(웃음)

이용배 지금이라도 봐주니 다행이다.(웃음) 그때 안치환이 노력을 많이 해줬다. 가사도 직접 고민하고 말이지.

FILM2.0 너무 늦은 건 아닌가. 왜 지금에야 DVD가 출시된 건가?

이용배 ‘장산곶매’가 격변기 때 만들어졌고 탄압도 당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각자 다 흩어졌다. 잘나가는 친구도 있고 그렇지 못한 친구도 있었다. ‘1년에 한 번 정도 망년회 같은 거나 하자’면서 일 년에 서너 차례 모였다. 그러다 작년 말인가? 독립영화 상영관이 생겼던 게 계기가 됐다.

FILM2.0 작년 11월 개관한 인디스페이스 말하는 건가?

이용배 맞다. 초반에 의미 있는 작품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영상자료원에 있는 필름을 깨끗하게 손봐서 관객들과 다시 만나자 싶었다. 모임도 있고 바뀐 상황에서 ‘럭셔리’하게 해 보자! 그게 작년 10월 말이었다. 인디스페이스 원승환 같은 친구들이 바람을 넣은 거다.

FILM2.0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는 거였나?

이용배 선배들 중 돈 좀 버는 사람도 있고.(웃음) 또 지원제도도 있다고 해서.

FILM2.0 영화진흥위원회의 DVD 지원 사업 말인가?

이용배 그런 제도가 기폭제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다들 맡은 바 일도 있었고, 영화판을 아예 떠난 이도 적지 않더라. 그래서 학교에 있는 내가 총대를 멘 거다. 올봄에 800만 원 정도 지원금이 확정됐고, 회비도 좀 갹출해서 1,300만 원 정도를 모았다.


FILM2.0 벽걸이 LCD 브라운관으로 봤더니 화질이 나쁘지 않더라.

이용배 프레임별로 다 손질하면 돈이 굉장히 많이 든다. 그래서 네가필름 중에 디지털화할 부분만 깨끗하게 손봤다. 할 수 있는 색 보정은 다 했고. 옛날 브라운관으로 보면 절대 안 된다.(웃음) 기획안은 먼저 만들어놓았지만 사실 김숙 PD가 고생을 많이 했다. 방학인 6월부터 본격적으로 작업했다고 보면 된다.

FILM2.0 작업하면서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던가?

이용배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기억을 망각하고 살았다는 느낌이 있었다. 사실 5, 6년 전에 민예총에서 문화예술 30년사를 회고하는 글을 청탁받은 적이 있다. 당연히 <파업전야>가 한 꼭지 차지한 거고. 그때는 글로 정리했지만 이번엔 사람들을 직접 만난 거지. 못 봤던 이들도 다 만났다. 서로 ‘세월의 두께가 만만치 않구나, 각자 인생 역정을 겪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나름의 기획안을 접었다. 생생한 목소리만 담아도 충분히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FILM2.0 <파업전야>는 자체는 거시적일지 몰라도 제작기는 개인을 쫓아가는 작업이었겠다.

이용배 훔쳐보는 재미랄까.(웃음) 본업은 애니메이션이지만 한때 다큐멘터리를 해볼까 싶었던 젊은 시절의 꿈도 꿈틀꿈틀 일어나고. 6월이 ‘촛불정국’이었잖나. 처음 기획은 모두 거기 불러놓고 달라진 18년 세월을 조감하는 거였다. 그래서 첫 촬영이 ‘명박산성’이 세워지던 날이었고.(웃음) 처음엔 나도 좀 격렬했고 참여한 사람들도 긴장했다. 그런 화면으로 다큐멘터리를 하나 더 만들어볼까도 싶었는데…(웃음) 어쨌건 내 안에 있는 무엇이 깨어나는 느낌이 들더라.

FILM2.0 분량도 만만치 않았겠다.

이용배 60분짜리 테이프 20개 분량이 나왔다. 김숙 PD는 그걸 다 녹취했고. 그걸 보며 ‘참 기막힌 세월이구나, 사람들이 다채롭게 변했구나’ 싶더라. 그래도 다들 <파업전야>란 지점이 던져지니 열정을 끌어내더라.

FILM2.0 구체적으로 <파업전야> 얘기를 해보자. 어떤가? 18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오는데.

이용배 이제 조금 차분해진 것 같다. 옛날처럼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운동으로 접근하는 태도는 깨끗이 거세된 것 같다. 영화문법 혹은 영화 자체로 보는 태도가 생긴 거지. 자화자찬일 수도 있지만 그때 젊은 친구들이 참 열정적으로 만들었구나 싶다. 나는 그때도 나이가 좀 있었지만.(웃음) 물론 지금 감각으로는 뒤떨어지는 면도 있다.

FILM2.0 영화가 고전적이다?

이용배 그런 얘기는 당시에도 들었다. 문예운동을 하는 조선족 분들이 ‘꼭 북한영화 보는 것 같습네다’라고도 하더라. 정세와도 관련 있고, 선동도 많으니까.

FILM2.0 반대로 욕도 먹었을 것 같다. 너무 부드러운 것 아니냐고.

이용배 (웃음)욕 많이 먹었다. 철저하게 운동 논리를 펴는 쪽은 내레이션도 그렇고 너무 할리우드 따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었지.

FILM2.0 솔직히 조악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 앵글도 그렇고 미학적인 욕심이 엿보이던데.

이용배 모두 영화에 대한 열정만큼은 정말 철저했다. 당시 내 역할은 없는 제작비를 마련하는 거였다. 심지어 “형, 오늘 촬영 진행비가 없어. 2~30만 원만 있으면 라면이라도 먹을 텐데”라고 하는 거다. 난 “왜 그 돈이 필요하냐, 현장 나가서 어떻게든 찍자”고 주장하고. 당시 독립영화판에서 쓰지 않던 기자재를 많이 쓰잖아. 그래서 막 언짢아하고 그랬다. “야, 돈 좀 안 들이고 찍는 방법 없어!”하면서.(웃음)

FILM2.0 “그냥 카메라 고정시켜놓고 찍어” 그러면서?(웃음)

이용배 그래도 다행이다. 그 부분을 그 친구들이나 나나 지켜냈기 때문에. 노동 현장의 역동성이나 미학적인 차별성이 담겨졌다면 그런 노력의 결과다. 그때 못하게 했으면 18년이 지나서도 원망을 받았을 거다.(웃음)

FILM2.0 이번에 DVD 작업 하면서 18년 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겠다.

이용배 맞다. 자료가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스틸이나 자료들이 많더라. 당시 탄압을 받고 상영이 불허되면서 나한테 체포영장이 내려졌다. 사무실에 압수 수색이 들어오기 전에 막내한테 다 숨기라고 했던 거 같다. 그런 자료가 이번에 많이 나와서 다행히 스틸들을 DVD에 묶어 낼 수 있었다. 지금 보니 후배들 모습들이 너무 예쁘더라. 하얗고, 맑고 소년 소녀 같은 아이들이 그 험한 일을 했다는 것이 상상도 안 갈 만큼.

FILM2.0 팍팍한 일상에 오아시스 같은?

이용배 그 사진을 보고 있으니 어떤 천국을 만난 거 같더라. 현재야 술 마시면서 삶의 궂은 얘기나 하고 있지만 그때는 어찌나 예쁘고 맑던지.

FILM2.0 얼굴이 환해졌다.(웃음) 그 당시 힘들었던 얘기 좀 해달라.

이용배 다 어려웠지만 하필이면 겨울 촬영이었다. 동상도 걸리고 배도 곯고 씻지도 못했다. 부산에서 올라온 어떤 친구는 폐업한 공장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보다 우리가 더 노동자 같다고 하더라. 그들은 교대로 출퇴근하고 우리는 합숙하고 있었으니까. 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사실 많다.

FILM2.0 돈 구하느라 고생이 많았겠다.

이용배 돈 끌어오느라 여기저기 찾아 다녔다. 마치 보험회사 초년생이 실적 올리느라 친지, 동문 찾아가듯. 집에는 손 벌릴 수 없으니 주로 동문들을 찾아갔다. 진짜 고마웠다. 물론 나중에 원금은 다 회수해줬고.(웃음) 스탭들이나 배우들도 힘들었다. 특히 배우들도 다른 방법으로 끌어와야 했다. 연극하는 분들, 단역 배우들을 끌어 모았다. “이거 빨갱이 집단 아니야?”라고 말하는 배우들도 있었다. 그러면 어떤 때는 살짝 눙치고, 어떤 때는 “이건 우리 진짜 현실이니까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본질을 얘기해주기도 하고.

FILM2.0 ‘장산곶매’는 어떻게 결성된 건가.

이용배 <오! 꿈의 나라>를 만든 뒤 장편영화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고 의기투합해 만든 것이 영화제작소 ‘장산곶매’다. 정부의 탄압 속에서도 <오! 꿈의 나라>가 나름 공전의 히트를 쳤다. 독립영화 쪽에서 보기 드물게 대학가를 순회 상영하면서 알게 모르게 돈이 좀 모였다.(웃음)

FILM2.0 모금함 같은 거 말이지?(웃음)

이용배 (웃음) 그래서 종군기자들이 쓰던 16mm 캐논 스쿠픽 무비 카메라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때 막 홍기선 감독이 날 찾아왔다. 당시 나도 홈 비디오로 학생운동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하고 있던 때였다. “우리가 16mm 다큐용 카메라를 확보했는데 그걸로 현재 상황을 기록해 놓으면 언젠가 드라마가 되건 다큐멘터리로 묶어 낼 수 있을 거다”라는 거다. 그래서 난 바로 뛰어들었다. 집회며, 전교조 투쟁 현장이며, 파업 현장이며 가리지 않고 전국을 돌았다. 16mm 필름이니까 아껴서, 결정적인 찬스 때만 스위치를 눌러야 했다.

FILM2.0 모든 게 디지털화 된 지금과는 정말 상황이 다르겠다.

이용배 완전히 다르다. 카메라가 츄르륵 돌아가는 소리가 나면 긴장이 되면서 땀이 좍 흐르는 거다. 이걸 언제 끊을까. 아까우니까. 그렇게 찍은 것이 한 40분 분량이 됐다. 그걸 묶은 것이 <87에서 89로 전진하는 노동자>라는 다큐멘터리영화다.

FILM2.0 1987년이면 노동자 대투쟁이 있던 때 아닌가?

이용배 맞다. 그때 노동자들이 문화적 역량을 키워내려고 노력하던 시기다. 그래서 우리도 노동자들의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정보를 얻었고. 그러다 <파업전야>의 배경이 된 공장을 알게 된 거다.

FILM2.0 공장 측 방해는 없었나?

이용배 직장 폐쇄에 들어간 스패너 만드는 금속 관련 공장이었다. 우리랑 딱 맞아서 은밀히 시작한 거다. 사업주가 위장 폐업을 해서 노동자들이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를 당연히 환영했고. 알려지면 안 되니까 준비를 많이 했고, 촬영도 힘들게 강행했다.

FILM2.0 상영에도 우여곡절이 많았잖나.

이용배 <오! 꿈의 나라> 때 경험이 있으니까 전술적인 플레이를 했다. 배급을 어떻게 할 것이냐, 진짜 압수 수색이 떨어지면 영화 단체에 연락을 취해서 막아내자고 했다. 혜화동 한마당극장에서 상영을 했는데 미신고, 미심의 작품이라고 압수 수색이 들어왔다. 난 극장 옆 커피숍 2층에 피해 있었다. 수색이 떨어지면 빨리 민예총으로 들어가서 농성에 들어가자는 작전을 짰다. 바로 실행에 옮겼고 영화 단체가 모두 모여서 조직적인 연대에 들어갔다. 그게 잘 돼서 대학가 상영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FILM2.0 이후 각자의 길을 간 건가?

이용배 아니다. 우리 국민이 어디 가나? 탄압을 받으니까 보호해주느라 금반지도 나오고 다음 작품 제작비도 마련됐다. 농민 문제다, 아니다 장기수 문제가 먼저다, 교육 문제가 심각하니까 전교조 문제를 다뤄보자 의견이 분분했다. 그래서 다음 작품으로 만든 것이 <닫힌 교문을 열며>다.

FILM2.0 그때가 1990년 아니었나?

이용배 맞다. 그때도 사연이 많았다 젊은 회원들 중 철저히 운동론을 부르짖었던 축은 그 즈음 탈퇴하기도 했다. 새로 합류한 신입 회원도 있었고, 생계 문제로 충무로로 뛰어든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정리되는 과정 속에서 <닫힌 교문을 열며>까지 만든 거다. <파업전야>하고 2, 3년가량 지속이 됐지만 이후에는 활력이 붙지 않았다. 조직들이 겪는 소용돌이를 고스란히 답습했던 것 같다.

FILM2.0 이후 구성원들 개인은 ‘장산곶매’ 이력이 부담되지 않았을까?

이용배 나 같은 경우는 늦깎이 멤버다. 사회가 변혁되지 않으면 좋은 창작 애니메이션도 없다는 생각에 뛰어든. 활동하면서도 애니메이션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하청 회사에 취직했을 때도 사장이 이해를 해줘서 창작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약간 문제가 됐던 건 학교에 처음 들어갈 때다.

FILM2.0 아, 교수로 임용될 때?

이용배 포토폴리오에서 <파업전야> 부분은 살짝 뺐다. 또 그때 <파업전야> 관련해서 재판이 진행 중이었거든. 그때 내가 범법자였다. 지방, 고등, 대법원까지 가고 있는 상태라. 다행히 98년도인가? 그것도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 심의가 결정났다. 그때 뼈저리게 느낀 게 법원에 재판이 계류되어 있으니까 여권도 안 나오더라. <와불> 건으로 해외에 나갈 일이 있었는데 말이지.

FILM2.0 다른 구성원들 경우는 어땠나?

이용배 다들 감추거나 다른 식으로 둘러대거나 그랬을 거다. 가령 공수창이나 장윤현 감독은 지금은 성공하지 않았나. 만약 어려웠더라면 그 부분이 걸림돌이 돼서 잘나가던 프로젝트가 엎어질 수도 있었을 거다. 이념적으로 다른 스펙트럼을 가진 이들이 있으니까.

FILM2.0 창작하는 분들은 그렇더라도 영화판을 떠난 이들은…

이용배 그렇다. 내가 가끔 글을 쓰면 후배 하나가 충고를 한다. 사회주의 냄새가 나는 문장으로 글을 마감하지 말라고. 나이가 있으니 이제 보편타당한 얘기로 결론을 내리라는 거지.(웃음) 그들도 그랬을 거다.

FILM2.0 ‘386’이란 세대 규정은 싫지만 ‘장산곶매’ 멤버들은 확실히 80년대 운동권 세대들이 보이는 궤적을 상징하는 것 같다.

이용배 나도 ‘386세대’란 용어가 싫다. 하지만 맞다. 그럴 수 있다. 우리 멤버들 중 대중적으로 성공한 케이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평범하거나 여전히 ‘장산곶매’ 당시 성격대로 그렇게들 살아가고 있다. 시류가 변했다고 소주가 포도주로 바뀌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FILM2.0 보수 언론에서는 ‘장산곶매’ 출신이라고 괄호 치고 보는 시각도 있지 않나.

이용배 그러게 말이다. 이제는 그들도 바뀌어야 할 거 같다. 그래서 어쩌라고.

FILM2.0 혹시 <안녕, 허대짜수짜님> 봤나? 마치 <파업전야>의 18년 후 이야기인 듯하다. <파업전야>에 출연한 두 연기자가 그 영화에서 가장 뭉클한 장면을 연출한다.

이용배 우리 연기자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아직 못 봤다. 혹시 엄경환 선배인가? 꼭 봐야겠다. 김숙 PD한테도 두 영화를 연결시키자는 제안이 들어온 걸로 알고 있다. 두 작품을 신선하고 새롭게 연결하는 것이 충분히 의미가 있을 거다.

FILM2.0 큰 이야기도 해보자. 심의도, 탄압도 없어졌고 세상은 민주화됐지만 막상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동시대 관객들이 어떤 의미로 <파업전야>를 받아들여야 할까.

이용배 공교롭게 새 정부가 부침을 겪고, 또 신공안정국에 맞춰서 출시됐는데 우리는 전혀 의도한 것이 아니다. 정권이 의도한 것이면 모르겠지만.(웃음) 18년이란 세월 속에서 우리가 대단한 변화를 겪었잖나.

FILM2.0 마치 ‘잃어버린 10년’처럼?

이용배 그럼에도 지금 18년 전의 상황이 반추되는 듯한 조짐이 보이고 있다. 우리가 기억을 상실한 것만큼 불철저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뭘 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이제 중년이지만 안락함이나 편안함에 머무르면 안 되겠다 싶다. <파업전야>가 가치나 의미가 있다면 그런 부분을 다시 짚어내 줘야 하지 않을까. 현재와의 소통 구조에서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부분이 불철저했고, 어떤 부분이 계승이 안 됐고. 그런 부분을 젊은 세대의 시각에서 볼 수 있게 던져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제작기가 나왔을 때 우리 학생들한테 아무 설명 없이 보여주기도 했고.

FILM2.0 분위기가 엄해졌겠다.(웃음)

이용배 분위기가 가라앉았지. 그래도 전체적인 맥락은 이제 2학년인 그 아이들한테 가 닿는 거 같더라. 우리와는 다르더라도 당대의 시간을 폭넓게 바라보는 시각을 줄 수 있을 거다. 적극적인 친구들은 우리의 현대사를, 문화, 영화사의 한 축들을, 그것과 관련된 주변 정황들을 훑어볼 수 있는 계기도 될 것 같고. 그것이 또 그들의 변화 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다. 만약에 이 DVD가 그런 기능을 해준다면 우리는 너무너무 고마울 거다. 또 그렇게 되야 하고.

FILM2.0 역시나 많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용배 맞다. 우선 많이 보는 것이 좋을 수밖에. 비판적으로 보건, 철저하게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건. 스탭들에게는 소중한 추억록, 추억집 같은 게 될 거 같고.

FILM2.0 또 한 번 일을 벌이려 작당 모의하는 건 아닌가? 운동했던 사람들 답게. 또 20주년도 얼마 안 남았잖나.

이용배 그렇진 않을 거 같다.(웃음) 굉장히 즐거운 자리가 될 거 같다. 그간의 소식들도 한번 확인하고, 변한 얼굴들도 확인하고. 아마 누군가 또 하나 추동을 하겠지.(웃음) 충분히 재미있고 의미 있는 거 같다.

FILM2.0 교수 이용배는 이제 애니메이션 안 만드나?

이용배 10년 넘게 교직에만 있었다. 나름대로 작품을 만들려는 의지는 있었지만 단편이나 소품에서 그쳤던 것 같다. 내년에는 10년 만의 안식년이다. 뭔가 꿈틀거리려고 의기충전을 하는 시기다. 이번 한 학기를 잘 정리해서 내년엔 꼭 뭔가 해보려고. 이번 계기로 나도 뭔가 움직여야겠다는 결정적인 동력을 얻은 거 같다.

FILM2.0 역시나 이용배 개인한테 가장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웃음) 다음 번엔 꼭 작품으로 인터뷰하자.

이용배 아유,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작품 완성하면 제일 먼저 연락하겠다.(웃음) 사진 석지욱

프로필 현 계원조형대학교 애니메이션학과 교수 | 애니메이션 <와불>(1991) <소나기>(1995

하성태 기자 /404.405 합본호. 첫 토크. 개인적으로 참 기분좋았던 인터뷰.

덧글

  • 아우라 2008/10/20 23:40 # 답글

    그러니까 이 분때문에 제가 그때 쇠파이프 들고 '상영사수'를 위해 전경들과 패싸움을 벌인거군요....^^
  • woody79 2008/10/22 00:21 #

    아우라님 학번이 살짝 보이는걸요.
  • 자지 커지는 kr 2022/09/07 17:46 # 삭제 답글

    아주 좋은 직업, 많은 유용한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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