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술자리, 그리고 ‘사람’들
윤성호 감독의 <은하해방전선>에는, 연출에 대한 부담으로 갑작스레 실어증에 걸린 영화감독 영재가 영화제에서 겪는 각양각색 에피소드가 녹아 있다. 한 게이 관객(양해훈 감독이 명연기를 펼쳤다)이 어느 평론가에게 반해 영화제 내내 그를 졸졸 따라다니기도 하고, 영화 속에서 지루하기 짝이 없던(결국 소통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식의 답변이 난무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판타지 속에서 영재를 일깨우는 촉매제 구실을 한다든지, 펀딩을 받기 위해 비굴하게 고군분투하는 영화사 대표와 프로듀서의 모습이 영화판 언저리에서 서식하는 그 누구라면 킥킥댈 수밖에 없는 공감의 순간을 제공해준다. 그중에서 압권은 왁자지껄한 영화제만의 술자리다. 영재는 눈이 맞은 여자 스탭과 하룻밤을 보내기도 하고, 누구는 동석한 여배우에게 뻐꾸기를 날리기도 한다. 그렇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밤은 해운대 이곳저곳에서 떠들썩하게 부딪치는 소주잔으로 마무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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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했겠지만, 지난 주말 부산에 다녀왔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절반의 FILM2.0 식구들은 해운대 앞바다에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이 즐비하다든지, 회는 또 어느 횟집이 싱싱하다든지 하는 귀가 솔깃한 정보와는 담을 쌓은 채 정신없이 돌아가는 영화제 취재에 한창일 것이다. 한심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단 40여 시간을 체류한지라 영화는 단 한 편밖에 보지 못했다.(그나마도 야외 상영작인 <스카이크롤러>가 20여 분을 남겨두고 상영 중단되는 바람에 온전히 즐기지도 못했다.) 그럼 대체 그 시간에 무얼 했느냐고? 해운대 주변과 영화제 스케치를 나름 마친 뒤,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 <은하해방전선>의 영재 버금가는 술자리를 즐겼더랬다. 오며가며 기자, 마케터, 감독, 스탭들을 만나는 일은 영화제에서 걸작들을 알현하는 즐거움보다는 물론 덜하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들의 취중진담을 통해 영화판 구석구석의 지금, 현재를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들 중 마케터 A는 현 마케팅 회사에서 새로 생긴 영화 마케팅 부서의 과장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막 새로운 직장으로 옮긴 상태지만 영화판 경력은 작은 매체에서 영화기자로 일한 것이 벌써 5년도 넘었다고 했다. 영화판을 채우는 기자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부터 2000년대 중반 이후 우후죽순으로 생긴 인터넷 매체까지, 여하튼 다채롭기 그지없다. 영화잡지의 경우도 월간지 스크린이 1980년대 초중반, 주간지 씨네21이 1995년에 출발했으니 외국과 비교할 때 전통을 운운하기에는 쑥스러운 수준이다. 능력 여하를 떠나 영화기자는 결국 글쟁이로 남든, 영화판에 본격적으로 입성하든, 업종 변경을 하든, 대다수는 끝내 변신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느 영화광 못지않은 지식과 애정을 자랑하는 A도 그런 수순을 밟은 것으로 보였다.

‘영화인’ B는 그야말로 영화라는 꿈을 먹고 자라왔다. 20대를 거치며 그는 영화제에서 스탭으로 일했고, 최근엔 수입, 홍보사의 마케터로도 근무했다. 건강이 나빠져 퇴사하긴 했지만, 죽어도 영화를 그만두진 않을 거라고 했다. 일찍이 영화광 출신 영화감독 트뤼포가 말하지 않았던가.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단계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고, 영화에 대해 직접 비평을 하고, 결국 영화감독으로 나서는 일이라고. B는 이제 자기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늦었을지 모르지만, 종국엔 상업영화까지 나아가고 싶다는 포부가 당차 보였다. 술이 좀 더 들어가자, 우리 영화판의 착취구조, 특히나 그야말로 영화에 대한 설익은 환상만 가진 햇병아리 사회 초년병들을 착취하는 홍보, 마케팅 사의 현실을 성토하고 있었다. 허나 그게 어디 홍보사만의 문제던가. 이 죽일 놈의 영화를 둘러싼 한국의 현실은 구성원들의 돈과 열정, 그리고 꿈을 야금야금 잠식하기는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2차로 술집을 옮기던 중에 영화감독 C를 만났다. 일단 신작 시나리오의 초고가 나왔다는 말에 반가움이 앞섰다. 솔직히 주목받는 젊은 감독의 차기작을 예전부터 궁금해했던 차였다.(그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이 지면을 통해 곧 소개하겠다고 약속하는 바이다.) 어찌 됐건 독창적인 영화를 고민하는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유쾌함이었다. 그때도 “나이트가 뭐가 나빠?”라며 프로듀서와 함께 부산의 유명 나이트에 놀러 갈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아, 함께하지 못해 지금도 아쉬울 따름이다.) 독립영화는 항상 우울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진중하고 고리타분한 이야기만 한다는 선입견과 편견에 시달려왔다. 그는 일단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낼 줄 아는 재주를 지닌 이였다. C가 독립영화판의 활력을 불어넣으며 차기작에 잰걸음을 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각자 정한 술집으로 향했다.

그런 점에서 새벽 해운대 모래사장에서 만난 D는 C감독과 꽤 대비되는 인물이었다. 부산 토박이인 그는 부산에서 대학 영화과를 졸업하고 줄곧 고향을 지켰다. 모두들 서울에 입성하려고 노력할 때도, D감독은 지역 영화계 활성화를 위해 부산에서 단편 작업을 계속해 왔고, 지금도 역시 부산에서 장편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한일 교류 형식의 영화제에 거장 감독을 모시게 됐다고, 또 그쪽 영화사에 시나리오를 보낸 상태라며 겸손하게 말하는 얼굴에 살짝 기쁨이 내비쳤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 더 크고 환한 웃음을 보고 싶다는 게 술이 얼큰하게 들어갔던 그 당시의 심정이었다. 그가 좋은 작품을 가지고 영화계의 환대를 받는다면, 그를 돕고, 그를 따르는 프로듀서 이하 고향 후배들인 스탭들도 희망을 품게 될 테니 말이다.

어떤 배우가 어떤 파티에 왔느니, 레드카펫에 누구누구가 참석했는지, 또 해외 게스트는 누가 왔는지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제일 우선되는 건 역시나 따끈따끈하고 일정 정도 수준을 갖춘 영화들이 즐비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번에 하 기자가 즐기고 만난 건 영화보다 해운대를 누빈 영화인들이었다. 부산의 술자리에서 마주친 그들 모두에게서 사람 냄새를 맡았다고 하면 과장일까. 그보다 앞서 영화판에서 다 같이 살아남아 매년 술잔을 부딪치자는 바람이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건 또 왜일까. FILM2.0 409호 블로그 2.0
by woody79 | 2008/10/19 21:42 | view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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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우라 at 2008/10/20 23:38
꽤나 알려진 영화제작자와 횟집앞 난간에서 술을 마시다 한 얘기가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인들의 놀이터이자 생존보고서이다."라고 했는데요. 그분도 듣고 맞장구 치며 웃으시더군요. 내년에도 살아서 갈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없진 않지만 또 버티다(?)보면 어찌 되겠지요.
Commented by woody79 at 2008/10/22 00:21
그때 제가 왜 연락을 안 드렸을까요...ㅠㅠ

그러게요, 부산은 그래서 취재보다 놀러가고 싶다니까요. 그래도 내년에는 빡세게 취재로 가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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