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욱의 용기, 하이킥의 사다리와 윤리 culture




그러니까, 영화에서든 어떠한 텍스트든 창작자가 자신의 주인공을 죽이고 살리는 것에 대해서는 일정정도 '윤리성'이라는 것이 작동해 한다. 이의 잘 알려진 버전은 너무나 쉽게도 찾아 볼 수 있을 듯 한데, 그것은 세익스피어극 <햄릿>일수도, 그리스 비극들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호러영화의 엑스트라 좀비가 아닌 이상, 전쟁영화의 일개 병사들이 아닌 이상, 창작자는 주인공의 죽음을 납득있게 처리해야 하고, 또 그들의 죽음에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텍스트를 보는 독자들의, 관객들의, 시청자들에 대한, 아니 자신이 창조해낸 캐릭터들에 대한 윤리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김병욱 PD가 용기를 냈다. 결말에 대한 무수한 비난과 소수의 이해 의견이 인터넷을 뒤덮었다(그래서 이 포스팅도 늦어졌다. 무언가 찬찬히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했기 때문에). 절반은 이해가 가지만, 또 절반은 이 극렬한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러니까 다수의 작가들과 연출진이 합의한 결론에 김병욱 PD의 의견이 어느 정도일지는 아직 인터뷰가 나오지 않아 모르겠지만, 그간의 전개를 보면 이러한 비극적 탈출구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할 수밖에 없다(무엇보다 이제는 드라마를 하고 싶다는, 1주일에 5일 방영되는 시트콤이 힘에 부치다는 얘기를 인터뷰에서 밝혔던 걸 상기한다면, 이러한 결말에 더더욱 응원을 보내고 싶어진다).

<지붕뚫고 하이킥>은 처음부터 세경의 드라마였다(온전히 아이의 시점으로 전개하지 않는 이상, 신애에게 무게추를 기울이지 않은 것 또한 수긍이 간다).  그들이 서울에 도착해 부유층 가족과 뒤엉키면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이 이 시트콤의 중심이었다. 그래서 이 시트콤은 세경이 지훈과 만나는 걸로 드라마를 시작해 세경의 고백과 죽음으로 드라마를 끝내버렸다. 이토록 무섭게 지켜진 수미상관에 대한 약속. 드라마트루기라는 것이 제 아무리 다중 플롯과 시점의 빈번한 교차와 회상 등등 온갖 기교를 가져다 쓴다고 해도, 주인공 중심으로 이끌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렇다라면 지금의 결말도 그리 무리가 아니지 않은가 싶다.

아니, 오히려 "중졸의 가진 것 없는 스무살의 여자 가사 도우미"가 지훈이라는 남자를 사랑하고 끝내 이뤄지지 못하게 되는 지독히도 선명한 계급 멜로 드라마의 관점에서 보면, 김병욱PD가 선택한 결말은 지극히 낭만적이고 고전적인 것이 되어버린다(마치 파스빈더의 멜로 드라마 처럼?). 그러니까 사다리의 가장 아래에 매달려 있는 세경이에게 제작진이 만들어 준 탈출구 중 하나가 이러한 비극적 결말이지 않았을까. 또 6분 여에 걸친 마지막 시퀀스에서 세경이의 대사에 이러한 결말에 대한 해명이 모두 담겨 있기도 하다. 식탐 많았던 동생이 먹는 걸 줄이고, 아파도 병원에 못가는 상황, 가난해도 동생이 뛰어놀수 있는 곳으로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 무엇보다 처음으로 사랑했던 이에게 고백한번 할 수 없는 남루한 처지. 그것이야말로 세경이 놓아버리고자 했던 사다리의 끝자락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드라마 혹은 시트콤이 가진 낭만성을 거역하면서 김병욱 PD가 직시하고 싶었던 것은 계급적 상황을 뚫을 수도, 또 하이킥을 날릴 수도 없는 세경의 처지였고, 그러한 감정은 최소한 중반부까지, 그리고 종영을 1주일 앞둔 상황에서는 적절하게 그려졌다고 보인다. 온전히 '하이킥'을 세경의 드라마로 이해한다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김병욱PD가 들어준 것으로 이해가능하다는 말이다. 창작자의 윤리성 또한 위반하지 않으면서, 또 넘쳐나는 막장 혹은 보수적인 일일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정음이처럼 이겨낼 수있는 여백을 줄 수 있지 않았느냐고? 아니, 그것이 제작진이, 김병욱 PD가 바라본 이 "빵꾸똥꾸" 같은 절망적인 한국사회에 대한 외침이라고 이해해 줄 수 있지도 있지 않을까. 그것이 시트콤 장르의 관습을 멀찌감치 이탈하면서도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그에 대한 답변은 10아시아와 김병욱 PD와의 인터뷰가 올라온다는 수요일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마지막으로 여느 한국드라마 보다 처연하고 담백한 멜로 드라마의 라스트신을 완성하고, 또 세상에 내보낸 제작진에 박수를.

PS. 아무리 그래도 이런 결말을 기대한 것은 아니잖아효.






덧글

  • 大望 2010/03/23 03:10 # 답글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을 이용한 분석글도 좋고 이글도 좋고 다 좋습니다만 정작 지들이 좋아서 죽은 것도 아니고 뜬금없는 교통사고라는게 아직도 짜증이 가시질 않아 화병이 도질 지경이랍니다.(시트콤 한편에 이러고 있는 내일 모레 마흔인 제가 우습기도 합니다만...ㅠ,ㅠ)
    때늦은 자각이니 뭐니 다 필요없고 개연성 측면에서 제작년에 가루가 되도록 까인 디워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요.
    어떤 분 말씀처럼 나홀로 집에 주인공이 도둑을을 신나게 혼내주다가 결론은 주인공 꼬마애가 토막시체로 발견된 기분?
    저같은 경우 지세라인이니 준세라인이니 하는 건 큰 관심도 없고 해피엔딩이니 세드엔딩이니 하는 것도 아주 큰 관심거리는 아닙니다만, 이건 그야말로 배드엔딩이라 허탈하다 못해 화병에 우울증까지 생길 지경입니다.
    무산계급의 딸이자 중졸 학력의 소녀에게 굳이 죽음이라는 결말을 통해 신분의 사다리에서 해방감을 맛보게 해줘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회의적인 생각이 들뿐입니다.
    그 죽음이라는 것도 전술했지만 자발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불치병도 아니고 뜬금없는 교통사고라니..ㅠ,ㅠ
    모르겠습니다. 저또한 적정선을 지키는 마음으로 이 불쌍한 소녀를 응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러브라인 따위 필요없으니 그냥 이민가는 걸로 마무리했어도 많은 시청자들에게는 새드엔딩으로 각인되어 오랜 기간 기억될수 있었지 싶은데, 김PD는 우리에게 아련한 추억은 하이킥 날려주시고 불쾌한 기억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글은 참 잘봤습니다.^^

  • woody79 2010/03/23 15:48 #

    네, 댓글 이해 가는 바입니다. 매일 매일 만나던 가족 같은 식구에다 동생같은 세경이었을텐데, 그런 식으로 떠나 보내고 허탈해 하는 분들이 한 둘이 아닌 듯.
    그래도 시트콤은 떠나 보내고 현실려 돌아오기에 또 나쁘지 않은 결말 아닐까 싶어요.
    결론은, 현실은 시궁창!ㅎ
  • 미루 2010/03/24 22:30 # 답글

    음..좋은글이군요...전 그냥 시트콤에서 찾은것이 재미만은 아니기에 이런 앤딩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이글을 읽고보니 그럴수도 있겠구나..하게 되네요
  • 샤유 2010/03/25 21:28 # 답글

    처음 봤을때는 열받았지만 보면 볼수록 뭔가 느껴지는 결말, 하지만 전 반대합니다.
  • woody79 2010/03/27 11:05 #

    그 반대,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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