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의 단막극 <빨간 사탕> culture





빨강 사탕 예고편 1 from nuon on Vimeo.


단막극의 부활을 기다렸던 건 단지 폐쇄적이고 상업적인 드라마 시장에 대한 반발이나 당위 뿐은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게 단편 소설을 보는 듯한 자유분방함, 그 안에 깃든 작가의 주제의식이 70분 안에 오롯이 채워져 있을 때 오는 희열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을 뿐. 그건 ‘꼬꼬마’ 시절 보았던 ‘베스트셀러극장’의 아련한 추억과도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또 이선균, 김윤석, 박희순 등 지금은 톱배우들이 된 연기파 배우들의 배고픈 시절을 목도하며 발견의 기쁨을 누리던 2000년대 중반까지의 기억과도 엇비슷하다.

더더욱 노희경이란 이름 석자가 곁들여져 있을 때 그 기대감은 MBC 파업의 가장 아쉬운 대목인 <무한도전>의 결방 끝에 들려온 재개 소식만큼이나 부풀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재룡이 연기하는 40대 남자의 불륜이란 식상하고 단물 다 빠진 소재를 꺼내들었다 해도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다. 단막극이야 말로 온전히 작가의 ‘글발’이 좌우하는 장르 아니던가. 게다가, 어제 술자리에서 엿들은 40대 아저씨의 “결혼 후 2년 동안 연애한 친구랑 지금도 가끔 만나는데, 만리장성을 쌓았던 친구여서 그런지 거리낌이 없어. 이번에 자기 해외여행 가는데 언제 같이 가자고 하던데?”라는 자랑반 회고반 술자리 넋두리에서도 짐작하건데, 사실 세상에 발이 채이는 것이 불륜이요, 또 그렇게 평범하지 않은 인생사 속에서 비범하고도 보편적인 인간의 심리를 포착하고, 또 공감케 하는 것이 위대한 작가들의 창작물아니겠는가 말이다. 거기다 노희경만큼 불륜이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을 맛깔스러우면서도 징글징글하게 그러면서 인간냄새 ‘폴폴’나게 그려냈던 한국의 드라마작가가 어디 흔하던가.


빨강 사탕 예고편 2 from nuon on Vimeo.


어느 ‘모피디’는 오아시스, 블러 등의 철지난, 그러나 익숙한 브릿팝의 남발과 <이터널 선샤인>의 메인테마가 빈번하게 쓰인 것에 대해 투덜되던데, 사실 이번 드라마스폐셜, 그러니까 단막극의 부활을 알린 <빨간사탕>의 혼란스러움은 그런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었더라. 당혹스러운 것은 도대체 70분의 시간동안 제대로 감정 몰입을 할 수 없었던 주인공의 심리, 그 두께가 스포츠신문 연재만화 수준이었다는 게지. 그러니까 40대 초반의 중견 출판사 영업 부장 아저씨가 거래처 대형 서점 판매 사원 아가씨와 사랑에 빠졌다가 세상의 가혹한 시선을 신경쓰다 그 사랑을 쉽사리 팽개쳐 버린 것도 모자라 사랑이 완전히 떠나버린(!) 후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온 뒤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 는 이 평범한 이야기 속에, 내가, 우리가 기대한 것은 노희경만의 진한 사람 냄새 아니었느냔 말이다. 그런데 웬걸, 이건 왠지 불륜, 순수한 사랑, 닳고 닳은 세상과 현실의 벽, 오해, 죽음, 그리고 뒤늦은 빨간사탕이 칭하는 아가씨의 순수함 등등 예상가능한 키워드들을 조합해 낸 듯한 클리쉐들의 뒤범벅으로 가득차있더라는 얘기.

여기까지 들으면 완벽한 실패작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또 막상 전편을 보다보면 그리 발로 만든 드라마는 아닌데, 또 그것을 구원한 것이 이재룡, 박시연의 발군의 연기도, 그렇다고 홍석구 PD의 예술가적 기질도 아니었다면, 도대체 내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응? 혹시 일본드라마 <솔직하지 못해서>에 쓰인 <러브 액츄얼리>의 메인테마와도 같이 테마를 들으면서 어쩔 수 없이 기계적으로 연상됐던 <이터널 선샤인>의 아련함이었을까? 여기까지 쓰니 정말 비교할 수 없이 처참하게 찍었지만, 이재룡과 박시연은 서해바다 앞에서 첫데이트를 하고, 거기서부터 사랑에 빠진다.

물론 이런 소재를 다른 작가가 썼다면, 아마도 나락으로 떨어졌으리라. 그러나 빨간 사탕을 찾아드는 개미를 클로즈업하는 결말에서도 볼 수 있듯, 익숙하고 친숙한 소재로 70분을 끌어가는 것은 분명 노희경의 힘이었으리라. 클리쉐들을 조합해 보편성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채널을 돌리지 않고 그 끝을 보게 만드는 필력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화살은, 중편영화를 넘어서는 70분이란 물리적 시간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한, 더욱이 그리 개성이 넘치지도 또 공감을 얻어낼 수도 없는, 인물들로 ‘멜로드라마’를 실험한 노희경 작가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곱씹어보면 <이터널 선샤인>은 반짝이는 아이디어 안에 ‘사랑은 무엇일까’란 보편적인 질문을 적절히 녹여낸 수작이었다. 미안하지만, <빨간사탕>은 어정쩡하고, 조금은 안일한 결과물로 뽑아져 나와 버렸다. 게다가 여주인공을 무참히 죽여 버린 무책임함. 여하튼,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먹을 때는 술술 들어가지만, 다 먹고 나면 전혀 기억나지 않는 포장마차표 분식들. 달리 생각해 보면, 단편이 주는 압축의 힘을 다시금 일깨워 준 소중한 체험이랄까. 그래서 더더욱, 영화 작업을 병행해 왔던 박연선 작가의 두 번째 드라마스페셜을 기다려 볼 밖에.

뭐, 다시 한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노희경 작가의 다음 미니시리즈를 아기다리고기다릴 것이다. 그가 ‘미드’의 형식을 실험했다는 <그들이 사는 세상>처럼 어정쩡한 작품이 또 나오더라도, 그리하여 차기작으로 무려 <24>의 형식을 빌려온다고 해도 말이다.



덧글

  • 2012/11/16 17:41 # 삭제 답글

    음.... 대략 동감. 근데 불륜도 사랑인가에 대한 물음은, 미조구치 겐지가 불륜 연인의 미소로 엔딩을 끝냈을 때 이미 끝난 답이고 닫힌 진리인 듯. 그래서 이제 작품들, 드라마들에서 이런 상황에 대해 보여줄 건 사랑이냐는 물음이나 대답보단 좀 더 구체적인 지속의 곤궁이었을 듯.
  • 2012/11/16 17:45 # 삭제 답글

    근데 그것도 못했고. 손쉽게 여주를 죽여놓고 이게 사랑이었다운운하는 신파적 결말도 클리셰일 뿐 아니라 모순적. 베케트마냥, 사랑이란 그야말로 지속의 문제기 때문. 사랑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계속의 문제라, 이런 결말은 감정만 극대화하면서 은밀한 냉소, 다시 말해 사랑을 신기루나 폭죽 같은 것으로 존재화할 뿐. 정말 궁금한 건, 노희경 같은 내공 있는 작가가 왜 이런 결말을 썼을까 하는 점. 대중의 수용력을 계산해서 적당한 수준으로만 밀당한 건지... 암튼 글 잘 보고 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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