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닝하는 남자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old feature






2004년 봄 당시 엔키노에서 독자 영화평을 응모했더랬지요. 홍상수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라는 영화가 주제.
아마 저때 남자는 저, 다른 여자분을 뽑아 찬반 시각으로 아이템화 했던 거 같네요.

저 때 스물 여섯이었으니, 벌써 6년 전에 쓴 글.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 기도 하지만 부끄럽기도 한데...

결론은 여전히 홍상수는 경외롭다?

 


패닝하는 남자들


7년 만에 만난 헌준과 문호가 선화를 다시금 욕망하게 한 힘은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

첫사랑의 기억? 낮술의 힘? 두 사람의 힘 겨루기? 홍상수는 신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 놓은 시간속에서 인물들의 일상을 펼쳐보이지만 한층 더 단순한 구조속에 인물들을 밀어 놓았다. 그리하여 남자들의 여자들에 대한 욕망을 인물들의 기억과 현재속에 교차시키면서 욕망과 일상의 비루함을 냉소적인 시각으로 조망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다분히 속물 지식인으로 묘사된 헌준과 문호는 서로 오래된 선후배이면서 미묘한 감정을 드러낸다. 이는 유학과 7년이라는 시간 사이에서 자리 잡지 못한 영화 감독 지망생과 서울의 대학 강사라는 역전된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관계에서 오기도 하지만 서로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선화라는 여자와의 관계에서 기인한다. 중국집 앞에서 낮술을 마시고 부천에서 술집을 하는 그녀를 찾아가자는 헌준의 제안으로 문호는 잠시 망설이지만 그들의 힘겨루기는 부천에서 계속된다. 홍상수만의 냉소적이면서 재치 넘치는 장치는 남자들의 불완전한 기억이면서 현재의 그들의 관계를 이루는 미묘한 감정들을 적절히 드러내 준다.

먼저 자신의 넓은 집에 헌준을 초대해 놓고 문전박대하면서 문호가 주는 선물은 고작 정원에 쌓인 첫눈을 밟게 해주는 것이다. 헌준이 뒷걸음질로 시작해 앞 걸음으로 되돌아와 찍은 발자국은 같은 모양이면서도 다른 시간을 두고 겹쳐져서 인지한 사람만 알게 되는 시간의 흐름과 기억에 대한 홍상수식 농담이다. 더불어 이 농담은 앞으로 펼쳐질 기억과 현재의 엉킴이라는 영화 전반에 대한 상징과 서로 비슷하게 혹은 다르게 공유하고 있는 선화에 대한 기억의 은유로 기능하면서 문호의 치사한 성격을 드러내는 의미심장한 컷이기도 하다.

계속되는 낮술 장면에서 헌준과 문호가 중국집 여종업원에게 수작을 거는 장면도 재미있다. 각기 영화 감독과 미술 선생이라는 직업을 이용해 각기 배우와 모델을 제의하는 지식인적인 속물 근성을 보여주면서 시간의 차이를 두고 일어난 선화와의 기억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도 결국 비루한 현대인의 단면을 드러내는 '남성'들 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기억이란 것은 또한 얼마나 주관적인가? 탈역사화한 시간을 다루는 듯 하면서도 동시대성을 선명하게 묘사하는 홍상수의 '기억'은 이기적이고 주관적인 인간 본연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둘의 회상 시퀀스를 보자. 중국집에서 상대를 기다리며 창 밖의 스카프를 한 동일한 여자를 바라보며 시작되는 각자의 회상속의 선화는 그들만의 기억에서 조금씩 각색된 '선화'이다. 각자 둘을 만나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성격도 다를뿐더러 섹스중의 선화 또한 성격이 다르다. 우리가 전작 '오 수정'에서의 '수정'에게 경험했듯이 홍상수가 만들어낸 인물인 헌준과 문호의 기억 속의 선화이다. 강간당한 선화를 씻어낸 후 죄책감에 좌절하며 섹스하는 헌준이나 섹스 중 자신의 짧은 속도에 실망하는 선화에게 짜증을 내는 문호나 별반 다를 바 없는 홍상수식 '남성'일 뿐이다.

헌준과 문호의 힘겨루기는 계속되는데 그것은 술 기운과 기억과 관계의 차이에서 비롯되지만 그 사이 오가는 헌준과 문호의 미묘한 말과 행동에서 연약하기 짝이 없지만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 하는 인간에 대한 감독의 냉소적인 시선이 묻어난다. 부천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만 해도 문호에게 '어떻게' 살았느냐며 저자세를 유지하던 헌준은 도착한 이후부터 자신이 공식적인 선화의 애인이었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시선의 우위는 인물에게 골고루 분배되는데 문호는 다시 한번 선화의 집 베란다 안에서 선화의 '잘 살았느냐'는 질문을 무시한다. 또한 헌준은 선화에게 술에 가득 취해 아마도 진심일지도 모를 후회한다는 고백을 한다. 마지막으로 헌준과 섹스한 후 선화는 문호의 요구에 응해 오럴 섹스를 해 준다. 헌준과 문호사이의 주도권 쟁탈전은 자기 자신들에 대해서나 선화에 대해서나 첫 만남의 순간부터 술에 잔뜩 취했을 때 까지 계속되는데 이는 수평으로 패닝되는 화면안에서 동일한 시간속에서 벌어진다. 나중에 문호와 선화가 작은 방에서 섹스를 하러 들어가고 화면이 패닝되면 메리라는 큰 개가 헌준의 방으로 들어가는 패닝 숏이 그것이다. 동일한 시간에서 화면을 바로 옆으로 수평 이동시키면 인물들의 생각과는 다른 무엇이 펼쳐지고 있다. 그렇게 시간은 동일하지만 조금만 다른 공간에서도 세상은 우리의 의지와는 다르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마지막 시퀀스에서도 재등장한다. 헌준이나 선화 모두에게 무관심하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던 문호는 제자와의 잠깐 동안의 섹스로 단죄 받는다. 싸구려 여인숙으로 문호와 여학생이 들어가면 바로 화면은 패닝하며 옆 골목에 서 있는 문호에게 대들던 또 다른 남학생을 비추는 식이다.

마지막 시퀀스에 문호는 우연히 술자리를 갖게된 제자들에게 지식인의 허위를 설파하지만 저질이란 얘기나 듣게 되고 그에게 관심이 있는 여학생과 오럴섹스를 하게 되지만 남학생에게 걸리게 되어 걱정에 휩싸인 문호는 덩그러니 도로에 남겨진다. 선화와의 섹스도 기억 못하는 문호는 여학생에게도 마지막까지 기억력이 나쁘단 말로 핑계를 댄다.


헌준과 문호의 낮술은 감정 과잉을 낳고, 계속되는 술의 힘은 취중진담을 불러온다. 하지만 결국 기억은 흐려지고 섹스는 계속되지만 문호와 헌준의 모습은 한치도 변화한 것이 없다. 말을 또 다른 말을 낳고 허위는 또 다른 허위를 낳는다. 그래서 결론 없는 일상은 반복될 것이다. 문호는 질투하는 '남학생'을 낳고, 선화는 또 다시 오럴 섹스 해 주는 '여학생'을 만들 것이며 헌준은 또 다른 선화를 찾아 헤매일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여자는 남자의 과거이지만, 여자는 남자의 미래이다. 어짜피 수컷들에게 세상이란 여자들에 대한 기억과 관심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곳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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