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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잡지쟁이들
시사인 [60호] 2008년 11월 05일 (수) 10:47:26 고동우·이오성 기자 어제오늘 일은 아니라지만, 한 출판 전문가의 표현처럼 ‘최악의 상황’을 넘어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곳곳에서 구조조정은 물론이고, 휴간·폐간설까지 흘러나온다. (주)미디어2.0에서 발간하는 주간지 <스포츠2.0>과 <필름2.0>은 해당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명성을 누려왔으나, 꽤 오래전부터 심각한 경영상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진다. <스포츠2.0> 관계자는 “상습 임금 체불로 유능한 기자가 거의 떠나갔다. 최근에는 두 달 동안 월급이 안 나왔다”라며 “<필름2.0>의 경우 한 메이저 언론사의 인수설마저 떠돈다”라고 전했다. <드라마틱> 이어 <매거진t>도 휴간 이 관계자가 밝힌 위기의 원인은 역시 광고다. “스포츠 신문에 한계를 느낀 독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지만, ‘구매력’이 떨어지는 젊은 층이라 광고주로서는 별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골프 기사를 많이 싣기도 했는데, 이미 관련 전문지가 많아 소용이 없었다.” 잘나갈 때는 “한겨레신문 전체를 먹여 살린다”라는 말까지 있었던 <씨네21>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광고와 구독·판매가 적잖이 하락했다고 한다. 지난 10월20일, ‘긴급 구원투수’라는 평을 들으며 신임 편집장에 임명된 고경태씨는 “위기의식이 있는 게 사실이다. 2000년께 정점을 찍고 꾸준히 하강 국면이다. 영화판에서 권위와 광고 수주 등은 여전하지만, 온라인 매체의 융성으로 예전처럼 좋아질 수 있다는 낙관은 힘들 것 같다”라며 현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웹진이긴 하지만 <씨네21>이 창간(지난해 2월 독립)한 TV비평 전문지 <매거진t>도 10월27일 무기한 휴업을 선언했다. 백은하 편집장은 독자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2년 동안 익숙하게 정들었던 서교동 사무실을 떠납니다. 어디로 가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라고 인사를 남겼다. 지난 2월에는 <매거진t>와 비슷한 성격의 잡지(오프라인)로서 좋은 평가를 받아온 월간 <드라마틱>이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 바 있어 그 충격은 컸다. 판타지, 미스터리 등 장르 문학만 전문으로 다뤄오며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했던 월간 <판타스틱>도 10월호를 일시 휴간한 상태다. 최내현 발행인은 “판매량 등 독자의 성원은 변함이 없지만 광고 매출이 떨어졌다. 제작비 충당이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위기는 2000년대 초반쯤부터 본격화되었다. 김영환 한국잡지협회 경영지원부장은 “인터넷 등 뉴미디어의 등장·활성화와 무가지의 범람이 치명적이었다”라고 말한다. 각종 수치에서도 적나라하게 확인된다.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소비자의 매체 이용 실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2년에는 월 평균 1권 이상 잡지를 읽는다는 응답자가 37.1%에 달했으나 2007년에는 19.0%로 급전직하했고, 하루 평균 잡지 이용시간도 13분에서 4.9분으로 떨어졌다. 반면 인터넷(77분→82분)과 케이블TV/위성방송(56.9분→73.1분, 2006년부터 조사)은 꾸준히 상승세를 나타내 대조를 이뤘다. 광고 역시 자연히 비중이 줄어들었다. 2002년에는 전체 매체 중 8.0%를 차지했으나 2007년에는 6.1%였다. 텔레비전·신문 등 전통적 매체도 일제히 감소한 가운데, 줄어든 부분은 마찬가지로 인터넷(2.7%→12.8%)과 케이블TV/위성방송(3.4%→10.6%) 쪽으로 흘러들었다. 희한한 것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잡지 종수는 계속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집계에 따르면, 2004년 3929종에서 2007년 5006종으로 크게 증가했다. 김영환 부장은 이에 대해 “어느 분야가 잘된다 싶으면 유사 잡지를 만들어 쉽게 돈 벌려는 경향이 여전하다. 시대가 바뀌고, 독자의 눈은 높아졌는데도 잡지 창간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과열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라고 한탄한다. 하지만 잡지도 잡지 나름. 모든 잡지사에서 ‘곡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다. 추성호 대홍기획 미래전략팀장은 “고소득층과 소비 성향이 높은 골드미스의 증가, 명품 선호 정서 등에 힘입어 2007년께부터 라이선스 패션지, 멤버십지, 럭셔리지, 남성지 등이 큰 폭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반면 시사교양지, 영패션지, 과학기술지 등은 감소 추세를 보여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라고 분석한다. 잘나가는 ‘럭셔리’ 분야도 경쟁 격화 현장의 반응도 그렇다. 라이선스 패션지 분야에서 수위를 다투는 <엘르>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에 비해 10% 정도 페이지가 줄긴 했지만 큰 불안감은 없다. 패션·뷰티 쪽에 구매력이 높은 젊은 층 독자가 많아 다른 분야보다 사정이 나은 게 사실이다”라고 전했다. <럭셔리> <스타일H> 등 상류층을 겨냥한 명품지를 많이 발행하는 디자인하우스 관계자도 “잡지업계가 위기라는 말에 공감하지만 우리는 재정 구조에 여유가 있다. 광고수금률이 90%가 넘는다. IPTV 진출 등 잡지 콘텐츠를 다양하게 활용할 방안을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럭셔리’ ‘고품격’ ‘고소득층’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잡지업계의 새로운 출구가 될 수 있을까. 지난 8월 말, 44년 전통의 국내 최초 시사주간지인 <주간한국>은 ‘고품격 문화라이프지’로 변신을 선언해 언론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주간한국> 측은 “21세기 웰빙 사회에서 절대 행복요소로 떠오르고 있는 ‘문화적 삶’을 고양시키는 격조 높은 문화라이프 주간지를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종진 편집장은 변신의 배경과 그간 성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경영상의 이유도 있지만 언론 환경의 변화가 주된 요인이었다. 어떤 이슈를 다룰 때 보면 포털에 비해 일간지가 얼마나 느린가. 하물며 주간지는 다 걸러진 후의 체면치레용 기사가 많았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종래 시사지가 접근하기 어려운 문화 분야의 광고를 새롭게 개척할 수 있다고 본다. 최근 ‘한국의 혁신 문화도시’ 특별부록을 발간해 실제 수익을 내기도 했다. 국내 유일의 ‘문화 라이프 주간지’라는 점도 점차 알려지고 있어 기대가 크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예의 ‘럭셔리’ 분야도 경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패션지 <에꼴>은 이 분야의 부진이 계속되자 지난 4월 제호를 <에꼴럭스>로 바꾸고 콘텐츠에도 변화를 가했다. 인테리어지 쪽도 럭셔리지와 멤버십지에 대항하기 위해 일부 매체가 ‘고급’ 인테리어지로 전환 중이다. 고소득층과 젊은 소비층을 겨냥한 새 매체도 우후죽순 창간된다. 라이선스 패션지 <누메로>와 <나일론>, 라이선스 여행지 <트레블+레저>, 멤버십지 <KLPGA> 등이 최근 창간을 했거나 창간 예정이다. 추성호 팀장은 이와 관련해 “상류층이라 해도 지금과 같은 경기 침체 상황에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큰 폭은 아니겠지만 명품지 쪽도 낙관적이지 않다.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라고 전망한다. 편집·기획자 역량에 기대를 걸어봐? 아무리 경영상 여유가 있다고 해도 럭셔리지 등이 그냥 놀고 먹으며 잡지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 분야의 한 관계자는 “최소 연간 1억원은 쓰는 부유층의 마인드를 파악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이들이 소속된 클럽을 초청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본부장부터 편집장까지 교류를 위해 부유층·사회 리더층이 참석하는 대학 강좌를 듣는다.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라고 귀띔했다. ‘규모의 경제’에서 아예 시합이 되지 않을 때는 어쩔 수 없이 편집·기획자의 역량에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이 “잡지가 살아남으려면 편집·기획자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 이상의 새로운 발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한 소장은 특히 “한 일본 학자는 정보의 소비 방식이 달라졌다고 한다. 블로그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편집하는 것이다. 그런 달라진 환경에서 어떻게 대중의 흥미를 이끌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라며 얇은 잡지 한 권에 한 가지 주제를 담아 발간하는 일본의 ‘원 테마형’ 잡지의 예를 들었다. “원 테마라는 건 결국 ‘인터넷 검색’과 맞닿아 있다. 하나의 주제를 검색하는 것. 독자는 수많은 정보를 검색하지만, 어떤 게 좋은 정보인지 취사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독자의 시행착오를 막아주는 역할을 잡지가 해야 한다.” 한 영화전문지 기자는 최근 영화지들의 위기와 관련해 이런 분석을 던지기도 했다. “예전의 젊은 층은 영화지를 통해 자기의 문화적 욕구를 해결했다. 문화담론을 생산하는 곳이 영화 쪽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계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뉴스조차 대중적으로 소비되었다. <퐁네프의 연인들>의 레오 카락스 감독이 한국에 오면 환호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대중은 레오 카락스가 누군지도 모른다. 문화담론에도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영화지들은 과거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결국 살기 위해서는 영화지가 아니라 대중오락지로 갈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스타 콘텐츠’에서는 담론을 형성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영화지의 미래는 매우 비관적이라고 본다.” 방송·신문·출판에 비해 ‘찬밥’ 신세 정부의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용준 대진대 교수(신문방송학과·잡지진흥법 추진위원)는 “잡지는 다른 매체와 비교해 정부의 각종 지원 대상에서 철저히 배제되어왔다”라고 지적한다. 방송·신문·출판의 경우 매년 수백억~수천억원이 정부 예산과 각종 기금으로 지원되지만 잡지는 고작 2억원(2007년)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이는 각 매체의 고용 인원을 따져봤을 때도 형평성에 크게 어긋난다는 비판이다. 잡지업계 종사자는 4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반면, 방송(2만6000여 명)·신문(1만5000여 명)은 이에 한참 못 미치기 때문이다. 한국잡지협회 측은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잡지 등 정기간행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잡지진흥법)’에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지만, 획기적인 변화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회의감도 만만치 않다. 신문발전위원회·영화진흥위원회 같은 기금에 근거한 진흥위원회의 구성을 요구했으나 기획재정부 등의 반대로 ‘자문위원회’ 수준으로 내려앉은 탓이다. 이용준 교수는 “애초 요구했던 강력한 진흥 계획을 집행하는 위원회의 위상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진흥기금의 확보 방안도 명확하게 해결되지 못했다”라고 아쉬워한다. 일각에서는 좀더 근본적인 대안으로 인터넷 포털과 무가지 규제를 추진하기도 한다. 보수 단체가 중심이 되어 지난 9월 출범한 미디어발전국민연합(미발련)은 유료 콘텐츠의 활성화를 위해 신문법 등 관련 법 개정에 나서고 있다. 변희재 미발련 공동대표는 “인터넷 포털과 무가지로 인해 매체시장 전체가 초토화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신문 구독률이 가장 급격히 추락했고, 전문잡지와 출판단행본 시장은 반토막이 났다”라며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언론계의 관심을 강조했다. 잡지의 시대가 끝나간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한국언론재단의 한 관계자는 잡지가 오히려 ‘현대사회의 특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한다. “잡지는 다른 어느 대중매체보다 소규모의 동질적 집단을 대상으로 한다. 세분화·다양화·전문화하라는 특성은 현대적인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는 불특정 다수를 독자로 상정한 잡지가 인기를 누렸다면, 이제는 관심사를 공유하는 집단이 독자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가장 현대적인 매체인 인터넷과 유사한 속성을 띤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잡지는 지식 정보화사회의 심화·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매체다.” 물론 이런 ‘특성’만으로는 독자의 지갑을 절대 열 수 없을 것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이런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대다수 잡지쟁이가 오늘을 살고 있다.
벌써 3년이란다. 난 아마 햇수로 2년 때부터 참여했던가. 2006년 겨울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쩝, 별로 한 일도, 해 준 일도 없지만, 여하튼 뜻깊은 날을 맞아 여러 분이 함께 했으면 금상첨화겠다. 그냥 술 먹고 노는 모임이 아니니 안심하시길. 영화쟁이들이 많이많이 모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당! ------------------------------------------------------------------------- ![]() 안녕하세요. 네오이마주 입니다. 오는 11월 1일은 2005년 가을 첫 발을 디딘 네오이마주의 3번째 생일입니다. 지난 시간 동안 네오이마주와 함께한 독자여러분과 객원필자를 비롯한 영화인들을 모시고 3주년을 자축하고자 조촐한 모임을 준비했습니다. 부디 바쁘시더라도 꼭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행사의 주빈은 누구보다 독자여러분이 되어야 마땅하므로, 네오이마주에 오시는 독자라면 누구라도 참석할 수 있습니다. 서먹서먹할 것이라는 걱정은 붙들어매셔도 좋습니다. 사전 준비 관계로 참석하실 분들은 덧글로 의사를 남겨주시면 행사진행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아울러 네오이마주의 재정 관계상 송구스럽게도 소정의 회비를 후원금형식으로 접수하려 하니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일시: 2008년 11월 1일(토) 저녁 7시 ~ 밤 12시(공식행사) * 장소: 마포구 서교동 소재 ‘쪼끼쪼끼’ * 일정: 7시 ~ 7시 30분 (간단한 저녁식사) 7시 30분 ~ 9시 20분 영화 <아스라이> 상영 후 김삼력 감독과의 대화 9시 30분 ~ 음주 및 야단법석 * 후원: 1인 1만원 (입장 시 접수대 초대형 돼지저금통 투입) +a 가. 7시 30분부터 영화상영 예정이오니 도착시간을 지켜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 기타문의 (이영) TEL (010)8384-5494 다. 찾아오시는 길 : 추후 자세한 약도를 올려드리겠습니다. ※ 3주년 특집행사 관계로 10월 세미나는 11월로 순연되며, 11월 21일(금) 저녁 8시 전순영씨의 발제로 개최할 예정입니다.
윤성호 감독의 <은하해방전선>에는, 연출에 대한 부담으로 갑작스레 실어증에 걸린 영화감독 영재가 영화제에서 겪는 각양각색 에피소드가 녹아 있다. 한 게이 관객(양해훈 감독이 명연기를 펼쳤다)이 어느 평론가에게 반해 영화제 내내 그를 졸졸 따라다니기도 하고, 영화 속에서 지루하기 짝이 없던(결국 소통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식의 답변이 난무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판타지 속에서 영재를 일깨우는 촉매제 구실을 한다든지, 펀딩을 받기 위해 비굴하게 고군분투하는 영화사 대표와 프로듀서의 모습이 영화판 언저리에서 서식하는 그 누구라면 킥킥댈 수밖에 없는 공감의 순간을 제공해준다. 그중에서 압권은 왁자지껄한 영화제만의 술자리다. 영재는 눈이 맞은 여자 스탭과 하룻밤을 보내기도 하고, 누구는 동석한 여배우에게 뻐꾸기를 날리기도 한다. 그렇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밤은 해운대 이곳저곳에서 떠들썩하게 부딪치는 소주잔으로 마무리가 된다.
![]() 짐작했겠지만, 지난 주말 부산에 다녀왔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절반의 FILM2.0 식구들은 해운대 앞바다에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이 즐비하다든지, 회는 또 어느 횟집이 싱싱하다든지 하는 귀가 솔깃한 정보와는 담을 쌓은 채 정신없이 돌아가는 영화제 취재에 한창일 것이다. 한심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단 40여 시간을 체류한지라 영화는 단 한 편밖에 보지 못했다.(그나마도 야외 상영작인 <스카이크롤러>가 20여 분을 남겨두고 상영 중단되는 바람에 온전히 즐기지도 못했다.) 그럼 대체 그 시간에 무얼 했느냐고? 해운대 주변과 영화제 스케치를 나름 마친 뒤,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 <은하해방전선>의 영재 버금가는 술자리를 즐겼더랬다. 오며가며 기자, 마케터, 감독, 스탭들을 만나는 일은 영화제에서 걸작들을 알현하는 즐거움보다는 물론 덜하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들의 취중진담을 통해 영화판 구석구석의 지금, 현재를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들 중 마케터 A는 현 마케팅 회사에서 새로 생긴 영화 마케팅 부서의 과장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막 새로운 직장으로 옮긴 상태지만 영화판 경력은 작은 매체에서 영화기자로 일한 것이 벌써 5년도 넘었다고 했다. 영화판을 채우는 기자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부터 2000년대 중반 이후 우후죽순으로 생긴 인터넷 매체까지, 여하튼 다채롭기 그지없다. 영화잡지의 경우도 월간지 스크린이 1980년대 초중반, 주간지 씨네21이 1995년에 출발했으니 외국과 비교할 때 전통을 운운하기에는 쑥스러운 수준이다. 능력 여하를 떠나 영화기자는 결국 글쟁이로 남든, 영화판에 본격적으로 입성하든, 업종 변경을 하든, 대다수는 끝내 변신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느 영화광 못지않은 지식과 애정을 자랑하는 A도 그런 수순을 밟은 것으로 보였다. ‘영화인’ B는 그야말로 영화라는 꿈을 먹고 자라왔다. 20대를 거치며 그는 영화제에서 스탭으로 일했고, 최근엔 수입, 홍보사의 마케터로도 근무했다. 건강이 나빠져 퇴사하긴 했지만, 죽어도 영화를 그만두진 않을 거라고 했다. 일찍이 영화광 출신 영화감독 트뤼포가 말하지 않았던가.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단계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고, 영화에 대해 직접 비평을 하고, 결국 영화감독으로 나서는 일이라고. B는 이제 자기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늦었을지 모르지만, 종국엔 상업영화까지 나아가고 싶다는 포부가 당차 보였다. 술이 좀 더 들어가자, 우리 영화판의 착취구조, 특히나 그야말로 영화에 대한 설익은 환상만 가진 햇병아리 사회 초년병들을 착취하는 홍보, 마케팅 사의 현실을 성토하고 있었다. 허나 그게 어디 홍보사만의 문제던가. 이 죽일 놈의 영화를 둘러싼 한국의 현실은 구성원들의 돈과 열정, 그리고 꿈을 야금야금 잠식하기는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2차로 술집을 옮기던 중에 영화감독 C를 만났다. 일단 신작 시나리오의 초고가 나왔다는 말에 반가움이 앞섰다. 솔직히 주목받는 젊은 감독의 차기작을 예전부터 궁금해했던 차였다.(그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이 지면을 통해 곧 소개하겠다고 약속하는 바이다.) 어찌 됐건 독창적인 영화를 고민하는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유쾌함이었다. 그때도 “나이트가 뭐가 나빠?”라며 프로듀서와 함께 부산의 유명 나이트에 놀러 갈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아, 함께하지 못해 지금도 아쉬울 따름이다.) 독립영화는 항상 우울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진중하고 고리타분한 이야기만 한다는 선입견과 편견에 시달려왔다. 그는 일단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낼 줄 아는 재주를 지닌 이였다. C가 독립영화판의 활력을 불어넣으며 차기작에 잰걸음을 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각자 정한 술집으로 향했다. 그런 점에서 새벽 해운대 모래사장에서 만난 D는 C감독과 꽤 대비되는 인물이었다. 부산 토박이인 그는 부산에서 대학 영화과를 졸업하고 줄곧 고향을 지켰다. 모두들 서울에 입성하려고 노력할 때도, D감독은 지역 영화계 활성화를 위해 부산에서 단편 작업을 계속해 왔고, 지금도 역시 부산에서 장편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한일 교류 형식의 영화제에 거장 감독을 모시게 됐다고, 또 그쪽 영화사에 시나리오를 보낸 상태라며 겸손하게 말하는 얼굴에 살짝 기쁨이 내비쳤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 더 크고 환한 웃음을 보고 싶다는 게 술이 얼큰하게 들어갔던 그 당시의 심정이었다. 그가 좋은 작품을 가지고 영화계의 환대를 받는다면, 그를 돕고, 그를 따르는 프로듀서 이하 고향 후배들인 스탭들도 희망을 품게 될 테니 말이다. 어떤 배우가 어떤 파티에 왔느니, 레드카펫에 누구누구가 참석했는지, 또 해외 게스트는 누가 왔는지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제일 우선되는 건 역시나 따끈따끈하고 일정 정도 수준을 갖춘 영화들이 즐비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번에 하 기자가 즐기고 만난 건 영화보다 해운대를 누빈 영화인들이었다. 부산의 술자리에서 마주친 그들 모두에게서 사람 냄새를 맡았다고 하면 과장일까. 그보다 앞서 영화판에서 다 같이 살아남아 매년 술잔을 부딪치자는 바람이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건 또 왜일까. FILM2.0 409호 블로그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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